당시 금융위와 금감원이 스스로 차이를 없앴다는 생각도 든다. '혼연일체'가 돼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뒤늦게 금감원 노조가 자조 섞인 말로 비판하기도 했다. 노조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내놓은 성명은 이랬다. "금융위는 금감원을 장악하려고 은행·보험·증권 부문 간 갈등을 이용했다. 승진이나 연수를 내세워 직원끼리 반목하게 만들었고, 결국 금융위 사무국에 협조하는 인물만 승진했다."
금감원이 안 보일 수밖에 없었고, 관련법령 취지는 무색해졌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하면서 총리령으로 금융위와 금감원을 분리했다. 한 사람이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을 겸임하는 것도 막았다. 정책기능과 집행기능을 나누어 독립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유는 금감원을 세운 목적을 보면 알 수 있다.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를 유지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해 경제 발전을 돕는 것이 목적이다. 모두 정파나 사익에 따라 포기해서는 안 될 가치다.
'감시견'은 금감원 같은 감독기구에 붙는 별명이다. 위기가 닥치기 전에 경고해야 한다. 실제로는 금감원이 금융위에 종속되는 바람에 조선·해운업 부실화를 못 막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뼈아픈 지적이다. 그래도 혼연일체 논란은 새 정부 들어 사라졌다. 이제는 금융위·금감원이 부딪치고 있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신문에서 본 여러 제목을 발췌하면 이렇다. '금융위 들이받은 금감원', '눈살 찌푸리게 하는 파열음', '협력해도 부족한 판에', '정치권도 불편한 심기'처럼 제목만 읽어도 불안해질 정도다.
윤석헌 금감원장을 한 달 전쯤 만났다. 그는 갈등설에 대한 물음에 답을 망설였다. "한목소리만 낸다면 금융위·금감원을 나눌 이유도 없겠다." 이렇게 자문자답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갈등은 과한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이견이야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지만, 국민을 상대로 '메시지 관리'에 실패했다는 지적은 막는 게 좋다. 최선을 다하고도 마지막에 나쁜 평가를 받게 마련이라 그렇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 차례 불발됐을 때에도 바로 메시지 관리가 도마 위에 올랐었다.
'금융위 해체론' 역시 같은 이유에서 피하는 편이 낫다. 윤석헌 원장은 지금 자리에 오기 전 이를 주장했던 걸로 안다. 이제는 금감원 노조도 해체론을 꺼내 들었다. 금감원 예산권을 쥔 금융위가 경영평가 점수를 박하게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지금은 해체론 자체가 논란만 키울 뿐 무리한 구상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준비해 금융위와 금감원을 나누었다.
금융소비자나 기업이 금융당국에 큰 걸 바란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전직 금감원장은 금융위·금감원 차이를 대부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체론까지 들먹이면서 금융개혁을 논해 보아야 국민에게는 와닿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청와대처럼 '금융상황판'이라도 만들기를 권한다. 이제 성과를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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