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여관은 일제강점기였던 1935년 ‘강활암’이라는 사람이 건립했다. 전통한옥과 일본식이 혼합된 건물로 일제강점기에도 실제 상호는 '보성여관'이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벌교는 인근 순천해역과 보성·장흥 해역의 중심지로서 포구가 발달해 읍 소재지로서 상가가 급속도로 번창하고 상인들의 왕래가 잦아 유동인구가 급증했다. 일본인들도 모여들어 벌교에서 물자와 농수산물을 일본으로 수송했다. 그 역사의 중심에 있던 '보성여관'은 당시의 5성급 호텔과 비슷한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문화재청이 보성여관을 매입했고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보성여관의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이후 복원사업을 거쳐 2012년 6월 7일 예전 모습을 되찾은 '보성여관'이 새롭게 개관했다.
◆근·현대인 삶 가장 가깝게 경험 가능
전시실은 보성여관과 벌교의 역사를 소개하는 곳이다. 소설 속 남도여관과 소설의 문화의 거리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의 벌교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소설 전권을 마련해 놓아 원고필사 체험 및 창작활동의 현장 경험을 할 수 있다.
다다미방은 근대식 일본풍의 여관의 모습이 가장 잘 보전된 공간이다. 보성여관의 다다미방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다다미방 중에서도 큰 규모에 속한다. 보성여관의 2층에 있어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갈 수 있다. 벽이 없이 미닫이문으로만 4칸으로 나누어져 있는 공간으로 실내 전체가 하나의 방처럼 느껴진다.
카페에는 지리적표시제 제1호로 등재된 보성녹차를 대표 메뉴로 해 보성에서 직접 재배된 전통차를 갖춰 놨다. 이 외에도 커피와 황차, 국화차, 아이스티 등을 갖춰 계절 및 기호에 따라 방문객들이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중·장년층 이상 되는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향수를 일으키는 곳이고 청년층에게는 다도체험의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보성여관 카페는 큰 창문 또한 매력적이다. 창가에 앉아 내리는 비·눈을 보며 차를 마시면 더욱 운치 있게 즐길 수 있다.
카페 옆에 위치한 자료실에선 추억의 공기놀이, 퍼즐 맞추기 등을 할 수 있어 어른과 아이 모두가 즐길 수 있다. 추억의 명작 동화책, 옛 교과서, 방학마다 그렸던 방학 계획표도 고스란히 그 시절 그대로 남아있어 향수를 일으키는 장소다.
소극장은 보성여관의 문화공간이다. 생생문화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때에 따라 공연 및 강의를 진행하고 평소에는 방문객 및 보성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으로도 이용된다. 예스러운 정취를 느끼게 하는 소품들을 통해 옛 보성여관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보성여관을 중심으로 소설의 문화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소설 속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펼쳐졌던 이런저런 장소들이 소설과 똑같은 위치에 있어 사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소설 속의 지형 묘사나 읍내 구도가 실제와 조금도 다름이 없어 어디까지가 소설적 허구이고 진실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보성여관만큼 문학기행에 적합한 곳도 찾기 힘들다.
소설 속에 나오는 현부자네 집, 소화의 집, 김범우의 집까지 모두 현존해 있는 건물들이다. 문화의 거리를 따라가면 소설의 주 무대를 모두 볼 수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소재지: 벌교읍 회정리)은 2008년 개관했다. 지상 2층으로 세워졌다. 소설을 형상화한 건물이다. 조정래 작가의 육필원고와 증여작품 등 총 144건, 623점의 전시물품을 보유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작품 전시관'이다.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에 적합
문간채에 2층의 누각이 서 있어 소설에선 현 부자가 이 누각에 올라 앉아 기생들과 함께 풍류를 즐기면서 자기 소유의 농토를 내려다 본다. 소설에서 현 부자의 이름은 ‘현준배’다
‘현부자네 집’ 앞에 있는 ‘소화의 집’은 2007년 복원 건립됐다. 소설에선 현부자네 전속무당인 월녀와 딸 소화가 살았던 집으로 나온다. 소설은 소화를 통해 봉건사회의 폐해를 고발한다.
옛 벌교교회(벌교읍 회정리, 현 대광어린이집)는 1935년 건립돼 벌교교회로 유지돼 오다가 1985년 이 교회 재단이 벌교읍 벌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이전한 후 2002년 내부를 개조해 유치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소설에선 회정리 교회로 나와 서민영이 이 교회에서 야학을 연다. 소설에서 언급되고 있는 '벌교교회당'이라는 음각이 남아있다.
철다리(벌교읍 벌교리)는 1930년 경전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건설된 교량이다. 철다리 아래 선착장 주변부터 부용교까지의 포구 주변에 일본인이 수탈한 물자보관창고가 있었다. 소설에선 벌교 주먹패들이 대장을 결정하는 결전 장소로 나온다.
벌교역(벌교읍 벌교리)은 1930년대 철도가 개통되면서 역사가 건립됐다. 20여 평의 대기실 및 사무실로 된 목조 건물이었으나 낡아 1988년에 철거하고 한옥 형태의 새 역사가 건립됐다. 소설 속 벌교역에선 △국회의원 마중하고 전송하느라 도열 △계엄사령관의 부임 행사 △염상진의 목이 내걸림 등 여러 가지 사건들이 펼쳐진다.
보성 벌교 농민상담소(벌교읍 벌교리, 등록문화재 제226호, 구 벌교 금융조합)는 1919년 건립된 일제강점기 금융조합으로 전형적 일본식 관공서의 형태이다. 내부 영업대, 금고가 남아있고 조합장 사택이 원형 보존돼 있다. 현재 농민상담소로 운영되고 있다.
소설에선 송경희의 아버지인 송기묵이 금융조합장으로 등장하고 이후 유주상이 금융조합장을 차지한다.
홍교(벌교읍 벌교리, 보물 제304호)는 원래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을 이은 다리가 있어 '벌교(筏橋)'라는 지명이 생겨났고 지명으로 지어질 만큼 중요한 교량 역할을 했다.
지난 1728년(영조 4)에 전라남도 지방의 대홍수로 이 다리가 무너져 1729년 선암사의 초안선사(楚安禪師)가 석교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소설에서 홍교는 벌교의 근원이자 상징으로 등장하고 김범우가 다리를 건너다가 멈춰 지역과 역사를 되새겨보는 장소로 묘사된다.
◆벌교 꼬막, 임금님 수라상의 8품 중 1품..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하면서도 짭조름 속에 단맛
김범우의 집(벌교읍 벌교리, 현 임봉열 가옥)은 원래 지역 대지주였던 김씨 집안 소유의 집이었다. 사랑채, 겹안채, 창고터, 장독대, 돌담 등 가옥 규모가 대지주의 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소설에는 양심적 대지주 김사용(김범우 아버지)의 집으로 등장한다. 독립군 자금 지원과 일본인 후원을 동시에 해야만 했던 이중적인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중도방죽은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등에 업은 일본인 '나카시마'가 1929년부터 시행, 1930년대 초반에 완공한 장양리 간척지 둑길이다. 현재는 산책로를 조성해 놓아 포구를 바라보며 걷기에 좋다. 소설에선 소작인들이 많은 고통을 겪으며 바다를 메우고 논을 만들고 정현동 사장이 논을 염전으로 만들려다가 농민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보성여관에서 하루를 보냈으면 보성군의 대표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최고의 행복한 경험이 될 것이다.
녹차 분말가루를 사료에 혼합해 돼지에 먹여 키운 보성녹돈은 육질이 연하고 콜레스테롤 함량이 일반고기보다 적어 고혈압과 동맥경화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육류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고 맛이 좋은 고품질 기능성 식품으로 인기가 있다. 전라남도 음식점에서 맛보는 다양한 밑반찬도 보성녹돈의 맛에 풍성함을 더해준다. 보성녹돈은 지역마트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대표 꼬막산지인 벌교의 꼬막은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하면서도 짭조름 속에 단맛이 난다.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의 8품 중 1품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벌교 지역에서 생산되는 꼬막은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 타우린 성분이 풍부해 간 해독은 물론 보양 음식으로 좋다. 꼬막은 꼬막정식, 꼬막전, 삶은 꼬막, 꼬막회 무침, 양념 꼬막, 꼬막국, 꼬막 탕수 등 다양한 요리가 있다.
녹차의 고장 보성에선 녹차 먹인 돼지와 녹차한우를 이용한 떡갈비를 특화시켜서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건강까지 더했다. 녹차잎은 고기의 잡내를 없애주고 맛을 좋게 한다. 녹차의 카테킨 성분이 기름기를 잡아줘 느끼한 맛도 없애주고 지방의 흡수를 적게해 주기 때문에 비만 걱정도 덜어준다.
보성읍 등에 가면 이런 음식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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