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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대표제, 대표성의 강화인가 강력한 정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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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8-12-2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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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장은영 기자]


여야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방안’을 검토하기로 지난 15일 합의했다. 그러나 속셈이 저마다 달라 시한인 내년 1월까지 구체적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벌써 합의를 뒤집는 발언도 나오고 있다. 연동제를 하려면 의석 정수를 지금의 300석보다는 늘려야 하나 국민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정수는 손대지 않은 채 비례대표 의석(47석)은 늘리고, 지역구 의석(253석)은 줄이는 수도 있지만 의원들의 반대가 거세다.

◆지난 총선결과를 '연동형'으로 하면 국민 83석, 정의 23석

2016년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득표율 25.5%로 123석, 새누리당은 33.5%로 122석, 국민의당은 26.7%로 38석, 정의당은 7.2%로 6석을 차지했다. 득표율로는 3위인 민주당이 의석수에선 1위가 된 것. 기존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따라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로 뽑고, 비례대표 의석만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나눈 탓이다. 득표율과 의석수 사이에 심각한 불비례다.

연동형(독일식)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당선자와 비례대표 당선자 수를 연동시킨다. 예컨대 의석수가 총 100석인데 A당이 30%를 득표했다면 A당의 의석은 30석(100×30%)이 된다. 설령 지역구에서 20석밖에 못 얻었다고 해도 그 차이 10석을 비례대표 의석으로 채워주도록 돼 있다. 앞서 언급한 20대 총선 결과를 연동제에 대입하면 민주당은 110석, 한국당은 105석으로 의석이 줄고, 국민의당은 83석, 정의당은 23석으로 의석이 크게 는다.

◆연동형은 사표(死票) 줄이고 소수세력 진출 쉽게

이처럼 연동형은 득표율과 의석수 간 비례성을 높임으로써 사표(死票)를 줄이고, 소수세력의 의회 진출을 용이하게 만든다. 최대 수혜자는 정의당이 될 거라는 데 이론이 없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으로 목숨을 걸 만하다. 앞으로 제2, 제3의 정의당이 속출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다원성의 심화와 참여의 확대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촛불민심의 제도화, 또는 의회화(議會化)가 구현되는 셈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나라가 뉴질랜드다. 최태욱 한림대교수(정치학) 등 일단의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이에 주목해왔다. 우리처럼 소선거구제 아래서 거대 양당(국민당·노동당)의 횡포와 무능, 득표율과 의석수의 불비례에 시달려온 뉴질랜드는 1996년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함으로써 다당제 국가가 된다. 그 후, 신자유주의로 초래됐던 양극화가 완화되고, 최저임금과 소득세의 최고세율이 인상됐으며, 고용 안정성이 증대됐다. 학자들은 “독단적 양당정치에 대한 ‘공공의 분노’가 정치개혁 요구로 진화된 사례”라고 평가한다(최태욱, ‘뉴질랜드의 선거제도 개혁과 정치기업가’ 한국정치연구 제21집 2호 2012년).

◆뉴질랜드는 연동형 도입해 양극화 완화

이런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연동형으로 추동된 다당제가 진보진영으로선 세(勢) 확대의 통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국회 진입의 장벽이 걷히면 그 다양한 이름(간판)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론 ‘범(汎)여권’으로 불리게 될 거대 진보연합세력의 등장을 보게 될 것 같다. 진보는 보수보다 열정적이고, 창의적이어서 국회를 더 역동적인 공론의 장(場)으로 만들 개연성이 크다. 그럼에도 대통령책임제 아래서의 한계를 노정할 수 있다. 다당제는 원래 내각제와 맞는 제도다. 대통령제에선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절대적인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정당 수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게 된다면 정치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국정을 주도해야 할 대통령의 리더십이 위축될 수도 있다.

이는 결국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표성의 강화인가, 아니면 강력한 정부인가? 양자 사이에 절충이 가능하다고들 하나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국회와의 관계를 보면 회의적이다. 황금분할이라는 5당 체제 아래서도 정치의 순기능은 제자리였다. ‘강력한 정부’를 얘기하면 예외 없이 “개발독재 시대로 돌아가자는 거냐”며 반발한다. 그러나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발전국가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분 단위, 초 단위로 변하는 4차 산업혁명의 전쟁터에서 요구되는 강력한 정부는 과거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를 터이다. 정말로 유능하고 효율적인 정부가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다당제 문 열리면 보수는 입지 더 좁아질 수도

걱정스러운 건 언필칭 보수다. 다당제의 문이 열리면 보수는 우군(友軍)다운 우군을 몇이나 확보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난망(難望)이다. 민주정치의 요체인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무너질까 두렵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기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뉴질랜드로부터의 교훈 하나를 추가한다. 신중함이다. 뉴질랜드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전에 두 차례나 국민투표를 했다. 1992년 구속력이 없는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의사(찬성 71%)를 확인했고, 1993년 정식 국민투표를 통해 도입을 확정지었다. 당시 찬성률은 54%였다.

이 과정에서 뉴질랜드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단체는 새 선거제도 도입의 의의와 내용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의회로부터 독립적인 왕립위원회를 만들어 홍보를 전담케 했다. 시사점이 많은 대목이다. 지금도 우리 주위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상태로 연동형제를 도입하기엔, 그것도 이해당사자인 의원들에게만 맡기기엔 사안이 너무 중대하고 심각하다.



                              이재호 초빙논설위원 · 동신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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