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속도'의 딜레마다. 시한에 대한 강박증세가 문재인 정부를 옭아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및 '종전 선언' 추진이 대표적이다.
청와대는 이달 초까지만 해도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은 별개"라며 '김정은 답방'에 무게를 실었다. 올해 '5월 남북 정상회담→6월 북·미 정상회담' 재연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외교 '플랜 B'였다. 애초 청와대의 플랜 A는 '미국 중간선거 전 북·미 정상회담→남북 정상회담'이었다. 이 구상이 틀어지자, '선(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 동력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한반도 시계추는 문재인 정권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끝내 미국 중간선거 전 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불발됐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김정은 연내 답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후에도 청와대는 "조기 답방은 틀림없다"며 서울 남북 정상회담에 불을 지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중재자론'을 앞세워 비핵화를 추동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때부터 김 위원장의 답방 시기를 놓고 '13일', '18일', '20일' 등 각종 설만 난무했다.
김 위원장이 연내 답방한다는 객관적 정황은 부족했다. △실질적인 비핵화 △연내 종선선언의 내용과 형식 △남북 간 핫라인 교류 △한·미 및 북·미 간 의견교환도 모두 안갯속이었다. 대북제재 등을 논의하는 한·미 워킹그룹(실무협의체) 구성은 사실상 미국 측이 만든 '과속 방지턱'에 가까웠다.
취임 후 전광석화 같은 속도전은 문재인 정부 국정동력의 알파와 오메가였다. 취임 1년도 안 된 지난 4월 27일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문 대통령은 같은 해 5월 26일과 9월 18∼20일 각각 제2·3차 남북 정상회담까지 성사시켰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취임 선서 후 첫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지시했다. 이른바 '트럼프식 행정명령'과 유사한 업무지시를 통해 취임 5일 만에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미세먼지 응급 감축 △기간제교사 순직 인정 등을 차례로 진행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는 혹한이 엄습했다. 일자리 정책은 '일자리 참사'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축인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취임 1년 반 동안 충돌에 충돌을 거듭하면서 헛바퀴를 돌고 있다. 최근 2년간 29.1%나 오른 최저임금은 대통령조차 보완책을 언급할 정도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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