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한반도 정세는 작년과 매우 대조적인 양상을 보였다. 지난해는 한반도 위기설로 불안했지만 올해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의 훈풍이 가득 찼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일시 중단과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로 한반도 정세는 한순간에 평화모드로 전환되었다.
이후 3월 우리의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면서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의 물꼬가 트였다. 4월의 첫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6월에 첫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기간 북·중 정상회담은 세 차례나 열렸다. 지난 6년간 소원했던 북·중관계가 한순간에 복원된 것이다. 그리고 9월 두 번째 남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고, 남북한은 군사분계선 일대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합의서 채택의 기반을 마련했다. 북·중 정상회담을 제외한 모든 회담이 공동성명문을 발표하는 걸출한 성과도 올렸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의 '판문점선언'은 비핵화 대신 남북경협을 강조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명문은 내실을 기하지 못한 채 '판문점선언'의 비핵화 조치를 따르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불만과 비판을 쏟아냈다. 한·미 최고 지도자들이 호언장담해 왔던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결여된 때문이다. 길잡이를 자초한 한국이 남북경협에 방점을 둔 것이 이러한 결과를 양산했다.
이에 올해의 우리 외교를 평가하자면 평균 이하라고 하겠다. 뉴질랜드행 대통령 전용기에서 십수개월 만에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외교문제만 질문하라고 할 정도로 자신감에 찼었다. 하지만 실제 외교 시험에서 연거푸 마신 고배는 평점을 낮췄고 지지율 하락까지 이끌었다. 물론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상당한 영향을 준 것만은 확실하다.
유럽국가의 대북 제재 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인권문제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더라도 북한 인권이 개선될지 여부가 제재완화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섣부르게 접근한 것이 낙제점을 받은 이유다.
최근의 분위기를 볼 때 내년의 한반도 정세는 더욱 암울해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북한이 미국의 비핵화 요구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7월의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의 영구적 폐쇄조치 결정을 하고는 성의를 표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검증 수용 의사도 밝혔는데, 그럼에도 미국이 종전선언이나 제재완화 등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아 불만이다.
하지만 이미 모두 알고 있듯이 북한이 이들 시설에 취한 자발적 조치는 정확한 검증을 피하거나 어렵게 만들려는 꼼수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실제 비핵화 실현에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내년에 2차 북·미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북·미 양국이 어떤 합의를 하든 크게 진척 없는 한 해가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북·미회담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성공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비핵화 관련 진전은 없었다.
그의 선언은 북한의 대미 위협문제의 일시적 해결을 의미했을 뿐이다. 즉, 더 이상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시험이 없어 성공적이었다는 자화자찬에 불과하다. 또, 2차 북·미회담에서 어떤 합의가 나오든 트럼프는 만족을 표하면서 계속 수수방관할 가능성도 크다. 미국이 내년 하반기에 대선 정국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대선에 대비하기 위해 트럼프는 중국과의 관세전쟁을 지난 1일에 합의한 90일 유예기간 내에 종결시키고자 외교적 노력을 배가할 것이다. 관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중국 적자는 올해 1000억 달러 이상 증가했다. 미국의 대중 수출이 감소하고 수입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한국의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노력도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내년 여름이면 사드 부지에 대한 일반 환경평가 결과가 발표되는데, 미·중 양국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 자명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 정부는 그전까지 비핵화에 진전이 있기를 내심 바라면서 북·미, 남북 회담을 개최를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다. 비핵화가 진전이 없어 중국의 불만을 사지 않도록 하고자 함이다. 이는 중국이 아직도 사드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내년에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한국 답방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내년은 외교적으로 자승자박의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을 믿어 달라’는 일차원적인 호소는 설득력이 없고, 사드문제의 해결을 호언장담한 정부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고 말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책망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남북 경협은 제재 위반 논란에 휩싸일 것이다. 일본과는 척졌고, 러시아는 무시한다. 국론마저 분열돼 자칫 고립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사실에 근거한 실질적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 최선의 전략은 주변국 모두와 협력을 꾀하는 동시에 이들을 전략적으로 유리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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