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전자업계 행사에 참여한 고위 임원을 만나 “요즘 투자가 너무 위축된 게 아니냐”고 질문한 데 대해 그가 오히려 되물은 말이다.
“불확실한 미래와 목돈의 지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기계적인 답에 그는 “기업도 마찬가지”라며 “최근 기업들이 어디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냐”고 탄식하듯 내뱉었다.
일자리 창출과 경기 활성을 목표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왜 도와주지 않느냐는 의도 섞인 공격적인 질문’을 민망할 정도로 되받아친 것이다.
전자업계의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도 올해 3분기 36조9862억원의 사내유보금을 찍으며 지난해 말 대비 44% 증가했다. LG전자는 같은 기간 사내유보금이 13% 오른 6조3457억원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정계와 학계, 시민단체들은 기업들이 그 돈으로 투자를 하지 않는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키워왔다.
하지만 기업들이 왜 자금을 풀지 않는지를 따져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당장 미·중 무역전쟁과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신흥국발 경제위기 가능성 등으로 대외 경영 환경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국내 상황도 만만치 않다. 그 방향성과 취지가 옳다고 해도 주 52시간 근무 시행과 2년 연속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 등은 기업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해 이 같은 기조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돼 기업인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범법자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여기에 더해 일부 기업들은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규제 잣대’로 인해 수차례의 검찰 수사를 받으며 위축될 대로 위축된 상태다.
기업들이 투자에 스스로 나설 수 있게 하지 않는다면 현 상황의 타개가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들이다. 업계에서는 정부만이 변화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채찍보다는 당근으로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 정부 들어서 휘두른 채찍들이 효과가 없다는 게 지난 1년 반 동안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도 악화일로의 경제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새해 경제성장의 방향을 대폭 수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2019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일각에서는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산업 생태계가 이대로 가다가는 무너지겠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비판 목소리는 정부에 뼈아픈 자성이 필요한 부분으로, 정부는 산업계 애로사항을 제대로 경청했는지, 소통이 충분했는지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며 경제정책 기조의 변화를 예고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정부가 산업과 고용이 위기에 처한 지역에 대한 단기적인 경기회복 대책과 함께 주력 제조업의 맞춤형 중장기 혁신전략이 함께 모색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새해를 앞두고 정부와 기업이 같은 방향을 보고 나아가는 것은 매우 반길 일이다. 하루빨리 세부 계획이 실행되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들이 곳간을 풀어 가정경제까지 살아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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