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선 딸이 아예 없는 게 나아요. 차라리 아이들을 데리고 일찍 이 나라를 떴어야 했어요.”
엘살바도르에 사는 호세 구즈만은 최근 딸을 잃은 슬픔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의 딸 17살 안드레아 구즈만은 지역 갱단에 의해 살해됐다. 몇 주 동안이나 그녀를 찾아온 갱단 두목의 구애를 거절한 뒤였다. 복면을 쓴 7명의 남성이 갑자기 구즈만의 집에 들이닥쳤고 부모와 오빠를 꽁꽁 묶은 뒤 안드레아를 납치해갔다. 몇 시간 뒤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들판에서 구즈만은 시체로 발견됐다.
안드레아는 남성의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중남미 수많은 여성 중 하나다. WSJ에 따르면 중남미 지역에서 여성 살인은 역대 최악의 상황이다.
중미의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 이 3개국은 마약과 연관된 갱들의 폭력 사건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살인률을 보여주는데 최근 수년 사이 여성을 겨냥한 살인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WSJ는 전했다.
인구 600만의 소국 엘살바도르에서는 지난해 무려 469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5년 사이 2배나 증가했다. 여성 인구 10만 명 중 13.5명이 살해된 것인데 미국의 6배다. 엘살바도르의 2015년 여성 살인 조사에 따르면 살해 방법도 여성이 피해자일 때 훨씬 잔인하다. 온두라스와 과테말라도 엘살바도르와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미 범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여성 살인은 주로 가족 안에서 발생하며 갱단에 의해 더 악화된다고 말한다. 갱단은 여성을 노예나 소유물로 취급한다는 게 현지 인권단체들의 말이다. 여성이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딸을 둔 부모들의 불안도 크다. 딸이 갱단의 눈에 들까봐 노심초사다. 갱단은 여성에게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가족들도 목숨이 위험할 것이라고 위협한다.
일반적인 가정 폭력이 여성 살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멕시코와 브라질까지 중남미 전역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소셜미디어와 TV 뉴스를 통해 등장한다.
전문가들은 현지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것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여성 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수사 인력을 확충하고 피해자에 심리 상담을 제공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들이 시위를 통해 연대에 나서고 있다. 이달 5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수천 명의 여성들이 10대 소녀 강간 살해 사건의 남성 용의자 2명이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항의하기 위해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아르헨티나의 대표 축구선수인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도 이 집회에 지지를 표했다. UN 통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에서는 30시간에 한 명 꼴로 여성이 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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