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국, 독일 등 글로벌 주요 증시가 올해 속속 약세장에 진입하고 있다. 역대 최장기간 랠리를 이어오던 미국도 위태롭다. 나스닥 지수는 이미 약세장에 들어섰고 뉴욕증시 간판인 S&P500지수도 2%만 더 떨어지면 약세장이다. 문제는 시장의 불안이 조만간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CNN머니에 따르면 지난 21일(현지시간)까지 약세장에 진입한 주요 지수에는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홍콩 항셍지수, 독일 DAX지수, 한국 코스피지수, 일본 토픽스지수 등이 대거 포함됐다. 통상 52주 고점 대비 낙폭이 20% 이상이면 약세장에 진입한 것으로 말한다. 하락 추세가 공고해졌음을 의미한다.
미국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도 21일 2.99% 급락하면서 약세장을 신고했다. 8월 29일 고점에서 20% 이상 떨어진 것인데, 4개월만에 시장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됐다. 다우지수와 S&P500지수도 최근 고점 대비 각각 16%, 18% 떨어진 상태다.
특히 수년 동안 미국 증시 랠리를 이끌었던 대표 기술주들이 급격한 매도를 경험하고 있다. 8월 29일 이후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에서만 1조2000억 달러 시총이 증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집계했다. 21일에도 페이스북, 넷플릭스, 아마존이 모두 5% 이상 급락했다.
슈뢰더 자산운용의 피터 해리슨 수석 애널리스트는 최근 투자자 노트에서 “주식이건 채권이건 거의 모든 시장이 올해 자산 가치가 하락했다. 금리 인상, 브렉시트 같은 정치적 불확실성, 미중 통상 갈등이 겹치면서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 연준이 최근 시장 불안에도 불구, 지난 18일 올해 들어 4번째 금리 인상에 나서고 내년에도 두 차례 추가 인상을 예고하면서 투심은 더 위축됐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는 21일 CNBC 인터뷰에서 내년 경제 상황에 따라 통화 정책을 재평가할 수 있다면서 긴축 속도 제어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시장의 불안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CNBC는 평가했다.
미중 무역 전쟁이 휴전에 돌입했지만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인 무역 강경파인 피터 바나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22일 공개된 일본 닛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간 무역협상이 휴전 기간인 90일 안에 타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과 무역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미국은 3월 2일 오전 0시를 기해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5%로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행정부가 22일 0시를 기점으로 셧다운(연방정부 임시폐쇄) 사태를 맞으면서 미중 무역협상이 지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은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싸고 팽팽히 맞서고 있어 셧다운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셧다운으로 인한 즉각적인 실물 경제 피해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장기화될 경우 시장 및 경제 충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글로벌 성장 둔화에 대한 공포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올해 호황을 누린 미국 경제마저 2년 뒤인 2020에는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10월에 내년 글로벌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대비 0.2%포인트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UBS 글로벌 자산운용의 제이슨 드라호 애널리스트는 WSJ에 “성장 둔화와 약세장 공포가 활개치고 있다. 증시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매수자가 별로 없다. 투자자들은 내년까지 지켜보자며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주요 증시는 진작 약세장에 들어섰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올해 1월 이후 낙폭이 27%에 달한다. 선전지수도 같은 기간 34%나 떨어졌다. 중국 주요 기업들이 편입된 홍콩 항셍지수도 9월에 약세장에 들어섰다. 특히 중국의 경우 미국과의 통상 갈등에 따른 실물 경기 악화, 부채 폭탄 우려 등이 악재로 꼽힌다.
일본 간판 닛케이지수는 최근 고점 대비 17.5% 떨어진 상태라 약세장 문턱에 섰다. 닛케이보다 더 많은 종목을 품고 있는 토픽스지수는 지난 20일에 고점 대비 20% 이상 낙폭을 찍었다. 올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은 일본 증시에서 480억 달러를 빼가면서 약세 흐름을 주도했다. 일본 증시는 워낙 대외 변수에 많이 흔들리는 만큼 글로벌 증시 흐름이 안정될 때까지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유럽의 경우 독일 DAX지수는 자동차 종목에 의해 압박을 받고 있다. 글로벌 통상 갈등과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기준 강화 등이 독일 대표 자동차 종목들을 끌어내렸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경우 올해에만 주가가 34% 가까이 떨어졌고 BMW 역시 18% 미끄러졌다. 그밖에도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의 FTSE MIB 지수가 최근 고점 대비 25% 떨어졌고 스페인의 IBEX 지수 역시 21% 가까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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