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한국의 해양정책의 수립과 실천에서 제일 부러워하는 부분은 이어도 건설이다. 중국은 누구나 기피하는 수중 암초인 이어도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이어도에 해양과학연구기지를 건설한 한국의 통찰력과 실천력을 감탄하며 질시하고 있다. 그래서 ‘짝퉁 이어도'라도 건설하려는 걸까. 중국은 최근 이어도 근처 암초인 파랑초(波浪礁, 중국명·딩옌丁巖)에 자국의 해양기지건설 방안을 면밀히 추진하고 있는 동향이 감지되고 있다.
‘제2의 이어도’격인 파랑초(1)*는 이어도 북동쪽 4.5 km 지점에 위치(좌표: 북위 33° 08′ 45″ 동경 125° 13′ 25″)해 있다. 길이 372m, 너비 169m, 면적 5만2800m²(축구장 7개 정도) 규모로 24.6∼27.2m 수심에 사람 발바닥 모양의 평평한 해저고원 형태를 띤다. 우리나라 해양수산부는 2006년 12월 29일 이 암초를 이어도의 별칭이었던 파랑도에서 차용, ‘파랑초’라고 명명했다.
한국은 현재 3개소의 해양과학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맏형' 격인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이어도 최고봉에서 남쪽 약 700m 떨어진 위치(동경 125도 10분 56.0초, 북위 32도 07분 22.0초)의 수심 40m 지점 수중암초 위에 설치했다. 1995년부터 수년간 해저지형 파악과 조류관측 등 현장조사를 실시 후 212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2000년 5월에 착공, 2003년 6월 완공했다.
400평 규모의 2층 Jacket형 구조물엔 관측실, 실험실, 회의실이 있고 기지의 최상부에 가로 21m, 세로 26m에 이르는 헬기 이·착륙장 외에, 등대시설, 선박 계류시설, 통신 등 해양, 기상, 환경 관측 체계와 8인이 15일간 임시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에서 데이터 검증을 거쳐 기상청을 비롯한 관련 기관에 실시간으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2014년 3월부터 무인형 기지에서 체류형 기지로 전환해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이어도에 이어 차남격인 가거초(可居礁) 해양과학기지는 전라남도 신안군 가거도에서 47km 서쪽에 위치(동경 124도 35분 44초, 북위 33도 56분 20초)한 최저수심 7.5m 암초 가거초 해저 15m상에 건설되었다. 총 사업비는 110억원, 2007년 11월에 착공해 2009년 10월에 완공됐다.
가거초 해양과학기지는 21m 높이의 건조물이며, 평균 풍속이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 맏형 격인 이어도 4분의 1 규모지만, 향상된 시스템이 적용돼 과학기지로서의 기능은 이어도보다 오히려 첨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거초는 이어도에 가려져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어도처럼 중국과 EEZ(배타적경제수역)문제로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은 당 나라 시절 가거초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가거초에 딴지를 걸며 우리 EEZ 안으로 순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국은 현재 이어도-가거초 전담반을 만들어 가거초 인근 지역에 순시선을 보내 감시하고 있다.
'막내' 격인 소청초 해양과학기지는 옹진군 소청도에서 남쪽으로 37㎞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초(동경 124도44분16.9초, 북위 37도25분23.3초) 해수면에서 약 40m 높이로 건설, 헬기 착륙장이 설치돼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원래 독도에 설치하려던 해양과학기지였는데 일본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한 이명박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이곳에 설치했다. 가거초 해양기지가 완공된 해인 2009년에 착공, 2014년에 완공된 소청초 해양과학기지는 최근 서해 미세 먼지중 70%가 중국발임을 확인하는(2018.11.20. KBS뉴스 참조) 공로를 세우는 등 막내 해양과학기지로서 기능과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항해자들은 암초를 죽음의 계곡으로 경원시한다. 그런데 누구나 기피하는 수중 암초인 이어도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해양법협약 발효 이듬해인 1995년에 이어도 해양과학연구기지 건설을 착수하고 2003년 완공한데 이어 가거초(2009년), 소청초(2014년)에 평균 5~6년에 한 개꼴로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한 것은 대한민국 해양 영토사에 길이 빛날 쾌거로 높이 평가한다.
우리나라 서해 영해상에 건설한 소청초를 제외한 이어도, 가거초 해양과학기지는 EEZ내에 위치해 있기에 당연 해양법협약에 근거해 건설됐다. 이어도의 해양과학기지는 ‘인공시설 및 구조물’(artificial installations and structures)이나 ‘인공도’(artificial islands)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양법상 도서로서의 지위를 가지지 못한다. 즉 콘크리트나 철강 등의 소재를 사용하여 설치한 구조물로서의 해양법상의 제반 효과가 부여되진 않는다. 인공시설 및 구조물, 또는 인공도는 아무리 크고 중요한 것일지라도 그 자체의 영해나 기타 관할수역을 가질 수 없으며 해양경계의 기준이 될 수도 없으나 암초 위에 고정구조물 또는 인공도를 축조해 해양과학기지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EEZ 내에서 연안국은 협약의 관련규정에 따라 인공도 시설 및 구조물 설치와 사용에 관한 관할권과 항행 및 구조물의 안전을 위하여 500미터 이내에 안전수역을 설치할 수 있다.(해양법협약 제56조 1항 b호의 (1)). 모든 국가는 공해상에 자유로이 인공도나 기타 시설을 할 수 있다(해양법협약 제87조 1항(d)). 공해에서는 EEZ에서와 달리 500m 이내 안전수역 설치는 할 수 없다.
이처럼 공해상이나 배타적 경제수역에는 인공도 시설이나 구조물 설치는 어느 나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해양법협약에 근거하여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했듯, 중국도 파랑초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하겠다.
그런데 관건은 선착순(first come first serve). 즉 국제법상 무주물 선점원칙이 원용된다는 것이다(2)*. 파랑초는 평균수심 25m로 해저 40m에 건설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보다 더 낮은데다가 평평한 해저고원형태로 해양법 등 국제법적 측면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오히려 이어도보다 더 쉽게 건설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술적 부분은 전문가집단의 보다 면밀한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시대를 선취하는 자가 역사를 제패한다. 자국의 해양 영토 확보에 혈안이 되고 있는 '시진핑 시대' 중국(3)*이 이번에도 ‘아차 이어도에 이어 또 한발 늦었구나!’ 부러움과 경외감의 탄성을 지를 수 있도록 파랑초에 우리가 한 발 먼저 제2의 이어도(파랑초) 해양과학기지 건설에 착수하자.
◇◆◇◆주석
(1) 2001년 1월 26일 국립지리원은 제주도민의 뜻에 따라 파랑도라 불리던 이어도(離於島 Ieodo)를 공식 지명으로 고시했다.
(2) 국제법으로 무주물 선점이 인정되려면 ①선점 땅이 주인이 없어야 하고 ②선점 주체가 국가여야 하고 ③선점 의사가 있어야 하고 ④해당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해야 한다.
(3) 중국은 남중국해의 90여개 바위섬과 산호초에다가 오성홍기를 게양하고 등대를 건설했다. 그중 5~6개의 대형 인공섬을 건설 항구와 공항, 헬리콥터 기지, 활주로와 격납고, 해군기지와 공군기지 지대공미사일 포대를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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