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2019년은 '선거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요 국가들이 올해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 등 주요 선거를 치르는 탓이다. 대부분 현재 지도자가 재선을 노리면서 경쟁자와 자리 다툼을 하는 모양새다. 세계적인 금리 인상 추이와 달러 강세 여파가 몰아친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높아지면서 올해 동남아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혼란의 말레이시아...차기 리더십은 어떤 모습일까
말레이시아에서는 민주주의 국가로의 도약을 향한 실험을 한다. 20년 전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던 안와르 이브라힘이 다시 정계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해도 마하티르 총리와 안와르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스트레이트타임스 등 현지 매체들이 균형을 이뤘던 '마하티르-안와르 리더십'이 부활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고 보는 이유다.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진 것은 금융위기에 대한 해법 때문이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말레이시아 경제가 타격을 받았을 때 안와르는 긴축 정책을 주장했다. 외환 통제 등을 강조했던 마하티르와 상반된 입장이었다. 처음에는 안와르의 경제 정책을 채택했지만 환율과 주식 시장이 불안정해지자 곧 마하티르의 정책이 반영됐다. 부총리까지 올랐던 안와르는 부패 및 동성애 등의 이유로 1998년 구속되면서 정계를 떠났다.
61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내며 지난해 화려하게 부활한 93세의 노장 마하티르 총리는 "취임 후 2년 내에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상태다. 언뜻 보면 안와르 체제가 도입될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법률과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안와르가 자신만의 카드를 조심스럽게 꺼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두 사람이 협조했던 '1997년 방식'을 다시 시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아직은 불확실하다. 마하티르 총리가 벌써부터 교육 분야 등 개혁에 욕심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인도·태국...재선 노리는 지도자들
동남아 최대 경제국인 인도네시아는 오는 4월 17일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유권자는 1억92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재선을 노리는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과 야권 대선 후보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인도네시아운동당(그린드라당) 총재의 양자 대결로 치러질 예정이다. 대선을 석 달 앞둔 현재로서는 조코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코위 대통령이 임금 인상과 인프라 확대 추진을 통해 경제 살리기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 향후 5년간의 2기 체제를 완성하는 데 있어 유권자를 설득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다만 친서민·개혁 정책을 내세워 돌풍을 일으켰던 2014년 대선 당시와는 다르게 지지율 격차를 벌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직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은 전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5월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재선에 나선다. 향후 5년간의 임기를 보장받는 이번 대선에서 승리해야 모디노믹스(모디 총리의 경제 정책)도 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다.
태국도 2월 24일 총선을 치른다. 지난 2014년 5월 헌정사상 19번째 쿠데타가 일어난 뒤 4년 넘게 군부 통치 하에 있던 태국의 쿠데타 이후 첫 총선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쿠데타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던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개헌을 통해 의원이 되지 않고도 총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쁘라윳 총리가 총선 이후에도 계속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가운데 탁신 계열의 푸어타이당이 또 한 번 승부사로 나설지 주목된다. 푸어타이당은 농촌 지역 빈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지지세를 등에 업고 2000년대 이후 태국에서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승리한 전력이 있다.
태국은 가계 부채가 수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어 금융권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태국 중앙은행(BOT)은 지난달 19일 통화정책위원회를 통해 7년 만에 기준금리를 1.5%에서 1.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세계적 긴축 정책 영향에 높아지는 시장 변동성
지난 한 해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 여파 등으로 해외 투자자금 이탈 위기에 직면했던 아시아 신흥국 경제가 정치적 불확실성에 직면하면서 다시 경고등이 켜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인도네시아와 같이 외국인 투자에 큰 폭으로 의존했던 나라일수록 자본유출과 환율 불안의 타격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적인 통화정책 정상화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아시아 신흥국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미 올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상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연준에 이어 양적 완화를 중단하고 점진적으로 출구 전략을 채택하기로 한 상태다. JP모건펀드 측은 신흥국의 자본 유출 등 아시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닛케이아시아리뷰는 전했다.
중국의 경기 침체, 미·중 무역전쟁 등도 투자자들이 큰 관심을 갖는 분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9년 중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6.3%로 낮춘 상태다. 2020년 전망치는 6%로, 30년래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중국 주가는 2008년 이후 최악의 해를 기록했다.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의 정치적 이슈로 무역 둔화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아시아와 세계의 많은 시장이 격변기를 맞았다.
문제는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될 경우 양국 무역 전쟁이 전면전으로 다시 격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무역·산업정책에 있어 중국 측에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협상 결렬 가능성은 높은 상태다. 블룸버그통신은 G2(주요 2개국) 경제 간 갈등이 조금이라도 고조되면 아시아 신흥시장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미쓰비시 UFJ 고쿠사이자산운용의 고니시 가즈하루 수석펀드매너지는 "많은 불확실성으로 인해 2019년 상반기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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