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항공기와 관련된 다양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화물운송이 중심인 해상운송과 달리 여객(승객)운송이 중심인 항공운송의 본질적 특성에 기인한다. 영하 50도의 외부온도를 뚫고 지상 기압의 5분의 1 수준의 좁은 항공기 안에, 단순히 앉아 있어야만 하는 것은 값비싼 운임을 지급한 승객에게 매우 고된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항공기내 불법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은 안전운항을 저해할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은 항공기에 탑승한 수백명의 승객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공보안법은 항공기내 불법행위를 유형화하여 처벌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항공기내 불법행위가 바로 ‘기내흡연’과 ‘소란행위’이다.
2. 승객의 협조의무와 기내흡연행위
항공보안법 제23조는 승객에 대하여 폭언, 고성방가 등 소란행위를 비롯하여 흡연행위 등을 포함한 다양한 유형의 불법행위 금지하고 있다. 이는 바로 법률에 의하여 설정된 공의무(公義務)라고 할 수 있다. 승객의 항공기 내 불법행위 금지에 대한 협조의무는 ① 항공보안법에 따른 공법상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② 항공운송인(항공사)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계약에 기초한 사법상의 의무이기도 하다. 안전하고 신속한 운송의무를 부담하는 항공운송인에게 협조해야 할 승객의 부수적 급부의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승객의 항공기 내 불법행위는 항공운송인의 급부의무 이행(제공)에 방해를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승객의 보호가치 있는 법익에 직접적으로 침해를 가하는 불법행위(민법 제750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항공사에서도 약관개정을 통하여 이러한 행위에 대한 위약금을 설정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흡연행위’ 자체는 다른 불법행위 유형과 비교하여 피해자를 특정하거나 결과발생을 요구하지 아니하므로, ‘흡연’ 그 자체로 기수에 이르는 형식범(形式犯) 내지 거동범(擧動犯)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항공보안법은 기내 흡연행위에 대하여 다른 항공기내 불법행위에 비하여 비교적 그 법익침해의 위험성이 비교적 낮다고 평가되는 것을 고려하여 징역형의 규정 없이 ‘벌금형’만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운항 중인 항공기 내에서 흡연을 한 경우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계류 중인 항공기 내에서 흡연을 한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항공보안법 제50조 제6항 제1호 및 제7항 제1호). 그러나 지상의 일반적인 금연구역에서 흡연하였을 때 1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보다는 비교적 강화된 처벌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국민건강증진법 제34조 제3항). 항공기 내에서의 흡연은 화재를 발생시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순히 벌금형만 부과되는 기내흡연에 그치지 아니하고 더 큰 불법행위로 나아갔을 때이다. 실제 기내흡연을 제지하는 객실승무원에 대하여 폭언을 하거나 위력을 행사하고 나아가 직접적인 폭행 등을 했다면, 더 큰 처벌이 뒤따르게 된다.
3. 항공기내 소란행위와의 경합
항공기 내에서의 폭력행위는 안전한 운항을 저해하고 인명이나 재산에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처벌의 필요성이 상당하다. 이러한 취지에서 항공보안법은 기장과 기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승무원에게 항공기의 보안을 해치는 행위 등에 대하여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승객에게도 그러한 협조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항공기의 보안, 운항을 저해하는 폭행 등에 대하여는 10년 이하의 ‘징역형’만을 규정하고 있다.
기내에서의 소란행위는 그 행위태양에 따라 다양하게 처벌될 수 있다. 먼저 계류 중인 항공기 내에서 폭언, 고성방가 등 소란행위를 하면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제50조 제5항, 제23조 제1항 제1호). 그러나 운항 중인 항공기 내에서의 폭안, 고성방가 등 소란행위를 하면 새롭게 징역형이 추가되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제50조 제2항, 제23조 제1항 제1호).
이러한 소란행위가 타인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유형력 행사로 이어진다면 이는 항공기내 폭행죄로 처벌된다. 단순한 항공기내 폭행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지만(제46조 제2항, 제23조 제2항), 그 행위불법적 요소가 항공기의 보안이나 운행을 저해하는 경우라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게 된다(제46조 제1항, 제23조 제2항). 형법상 단순폭행죄가 2년 이하의 징역 외에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질 수 있음에 비추어 보면, 엄중히 강화된 처벌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형법 제260조 제1항)
항공보안법에서 규율하는 폭언, 고성방가 등 소란행위는 실제 폭행·협박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항공기 내 폭행죄가 성립하는 경우 폭언, 고성방가 등 소란행위는 특별관계 내지 흡수관계로 보아 법조경합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구성요건적 평가와 보호법익의 측면에서 기내흡연 행위는 명백히 구별되므로, 경합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항공기 내 폭행죄가 성립하여 징역형만 선고할 수 있는 경우에도, 항공기 내 흡연죄가 별도로 성립한다면 벌금형이 병과되어 선고되는 것이다.
4. 실제 사건 - 인천지방법원 2018. 5. 25 선고 2017고단8403 판결
A씨는 2017. 8. 21. 23:30경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베트남 하노이국제공항으로 운항 중이던 이스타항공 항공기 내 화장실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소지하고 있던 담배를 흡연하였다. A씨를 제지하며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촬영하던 이스타항공사 승무원인 피해자 B씨의 배를 우측 발로 1회 걷어차 피해자가 넘어지게 하여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우측 족부 염좌의 상해를 가하였다.
이에 검사는 ① 항공기 내 흡연행위와 ② 항공기 내 승무원에 대한 폭행과 상해라는 2개의 공소사실로 A씨를 기소하였다. ①은 항공보안법 제50조 제6항 제1호, 제23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②는 항공보안법 제46조 제1항, 제23조 제2항의 항공기 보안 저해 폭행죄 및 형법 제257조 제1항 상해죄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며 이는 법원에서도 그대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법원은 ⓐ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 ⓑ 승무원들에 의하여 조기에 제압되어 더 큰 사고가 발생되지는 아니한 점, ⓒ 피해자의 상해는 다행히 중한 정도에 이르지 아니한 점, ⓓ 피해자와 합의가 이루어져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 ⓔ 피고인은 우울증 등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술에 취하여 우발적으로 범행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 그 범행이 항공기의 보안이나 운항을 저해하기 위한 확정적 인식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 점, ⓖ 음주운전으로 1회의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을 뿐, 그 외에는 특별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 일정 기간의 구금으로 인하여 반성의 기회를 가졌을 것으로 보이고, 이 법정에서 범행을 뉘우치며 성실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에 기초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4월 및 벌금 1,000,000원”에 각 처하면서도, 징역형의 경우 그 “집행을 유예”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5. 결론
위 사건의 경우 다수의 승무원들이 피고인에 대한 통제를 위하여 동원되는 과정에서 항공기의 기능이 저하될 우려가 있었고, 피해자는 피고인의 폭행으로 인하여 상해까지 입게 되었으며, 피고인은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으므로 그 행위로 인하여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은 의도적으로 벌금형을 배제하고 징역형만을 규정한 항공보안법의 의도와는 달리,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고야 말았다. 기내흡연 뿐만 아니라 이를 초과한 소란행위, 종국적으로 항공기 보안을 위협하는 폭행행위에 이르렀지만, 단순히 100만원의 벌금만이 부과된 것은 그 시각 두려움에 떨고 있을 다른 승객들의 피해를 고려하면 매우 경미한 처벌이라고 할 수 있다.
항공기내 불법행위가 단순한 항공보안법 위반의 문제만도 아니고 단순한 형법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는 항공정책 및 항공법, 항공사법 전반에 걸친 문제로서 결국 종합적인 설계와 법체계 전반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한 영역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의 논의들은 항공보안법만 바라보는 근시안적 태도에 머물고 있어 많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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