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오 칼럼] 공시가격 인상과 콜베르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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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오 건설부동산부 부장
입력 2019-01-0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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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오 건설부동산부 부장



요즘 부동산 세금 때문에 온나라가 시끄럽다.
정부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산정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대폭 올려 `보유세 폭탄‘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고가 단독주택이 밀집한 한남동의 경우 세 집 중 한 채는 공시가격이 50% 이상 오른다고 한다. 고가 단독주택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 명동의 알짜 땅도 공시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100%나 치솟았다.

정부는 “고가주택이 밀집한 곳만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고 전체 95%에 해당하는 대다수 중저가 단독주택은 상승률이 제한적일 것”이라며 다급히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단독주택이나 상가 빌딩 땅은 실제가격보다 공시가격이 훨씬 낮게 책정된 곳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일반 아파트는 서울·수도권의 경우 지난해 한 해 동안 가격이 많이 올라 예년보다 공시가격 상승폭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웬만한 집을 갖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은 공시가격 상승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8억원을 넘었으니 어쩌면 집주인의 절반은 공시가격 상승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할 당시엔 강남에 사는 일부 다주택자만 타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보유세 폭탄이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공시가격발 세금 폭탄이 시장가격 상승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국토교통부 담당공무원이 감정평가사들에게 ㎡당 시세 3000만원이 넘는 토지에 공시지가를 최대 2배까지 인상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가 토지의 공시지가가 비현실적으로 낮아 형평성 차원에서 예시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공시가격 급등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시인한 데 지나지 않는다.

비싼 집을 가진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세보다 지나치게 낮은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렇지만 속도와 방법이 문제다. 보유세 강화와 공시가격 현실화는 계획에 따라 장기적으로 시간을 두고 진행되어야 탈이 없다. 그동안 현실화하지 못한 것을 이번에 한꺼번에 올린다니, 납세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세금부과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50%나 100%씩 한꺼번에 올라서 보유세 부담이 한 해에 수백만원, 수천만원씩 늘어난다는데 버거워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고정수입이 없는 은퇴한 노인계층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지서’를 받게 되는 격이다. 세금을 내는 만큼 생활비와 병원비로 쓸 돈이 없어져 타격이 크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보유세만 오르는 게 아니라 건강보험료도 큰 폭으로 오르고 기초연금 수급자격에도 문제가 생긴다.

파문이 확산되자 정부도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국토부와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고 기초연금 선정 기준액을 조정하는 등 노년계층 보호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는 언 발에 오줌을 누는 정도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충격을 완화해 주거나 유예할 뿐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 때 근로자 증세안을 발표했다가 나흘 만에 ‘원점에서 재검토’로 한 발 물러선 적이 있다. 근로자의 유리지갑에서 손쉽게 돈을 빼내 가려다 예상치 못한 반발에 놀라 증세 대상을 절반으로 줄였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을 막고 규제로 묶고 신도시를 건설해 공급을 늘리는 종합 처방을 내놓았고 이번에는 보유세 증세와 양도소득세 강화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임기 내에 부동산 조세정의를 실현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너무 서두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부자증세여서 명분이 있다. 하지만 '억’소리 날 만큼 증세를 하고 퇴로까지 막는다면 납세자들이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책은 국민들을 위한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부동산정책의 최대 목적은 집값 잡기가 아니다. 집값 안정도 국민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투기꾼들을 솎아내고 그들이 부동산에서 얻은 불로소득을 회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평생 모든 재산으로 집 한 채를 갖고 있는 노년층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맞지 않는다. 세금 낼 돈이 없어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다면 그들에게 정부는 어떤 의미가 될까.

증세 때마다 프랑스 루이 14세 때 재상 장 바티스트 콜베르의 ‘거위털을 뽑는 지혜’가 거론된다. “세금 징수 기술은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는 게 콜베르의 원칙이다. 우리 자녀들이 집값 걱정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투기를 철저히 차단하는 부동산 정책을 써야 하지만 그로 인해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는 세금정책을 내놓기 전에 콜베르의 지혜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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