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CES의 명백한 스타입니다. LG는 인간이 구매하고싶은 엄청난 걸 만들어냈어요."(CNN기자 캐틀린 드 몬치)
"오,TV가 아니라 마치 종잇장 같아요." (미 IT전문매체 씨넷의 기자)
마치 신기루를 보는듯 했습니다. 두께 6mm 정도의 tv패널이 돌돌 말리면서 아래에 있는 스피커형태의 본체 속에 쏙 들어가버린 순간,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해졌습니다.
대체 어디로 어떻게 들어간 거야?
일부 취재진은 앞으로 나아가 제품 뒤쪽을 살폈습니다. 다시 전원버튼을 누르자, 사라진 TV가 솟아올랐습니다. 이런 TV를 인류가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죠.
현장에 있던 전문가는 흑백TV가 컬러TV로 바뀌던 때만큼의 파격적인 진화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 TV는 화면 사이즈가 커지고 선명도에서 진전을 이루긴 했지만, 모니터 자체의 형태가 사라지는 정도의 혁신은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LG가 웬만해서는 잘 놀라지 않는 디지털세상 인간들에게, 기립박수까지 치게 했군요.
# 기술의 비밀
자, 그럼. 1월8일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2019 CES(소비자가전전시회)의 스타가 된 제품(이 제품의 이름은 LG시그니처 올레드TV R이었습니다)을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모니터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고 생겨나게 하는 비밀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LG는 세계 최고의 올레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올레드(OLED)는 유기발광다이오드라는 패널 기술을 말하는데, 요즘 미인을 가리킬 때 자주 쓰는 '자체발광(自體發光)'이란 유행어의 어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기존의 LCD(액정디스플레이)는 백라이트(後光)가 필요하지만, 올레드는 말 그대로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밝을 뿐 아니라 명암비가 혁신적으로 높아지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레드는 구부리는 것이 자유롭기에 롤러블이 가능해진 겁니다.
브랜드명인 'R'은 롤러블/레볼루셔너리(혁신적인)/리디파인(공간개념의 재정의)의 앞글자를 딴 것이라고 합니다. LG는 롤러블의 기술을 공간개념의 재정의(redefine the space)란 혁신에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죠.
# R은 TV인가
권봉석 LG전자 사업본부장(사장)은 이런 말을 하는군요. "디스플레이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진화하는 디스플레이는 TV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분적으로만 '예스'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아까 '공간을 재정의한다'는 것은 TV의 공간은 TV가 필요할 때만 점유하는 공간이란 개념을 말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이것을 LG에선 풀뷰(full view)라고 표현했습니다. 화면을 가장 큰 사이즈로 보여주는 거죠. 이 낱말은 풀뷰 상태일 때만 TV라는 의미를 담습니다.
풀뷰가 아닐 땐 뭘까요? 박스 본체 안으로 패널이 완전히 들어간 상태(제로뷰)는, 4.2채널 100와트 출력의 강력한 사운드를 가진 스피커입니다. 물론 풀뷰 상태에서도 작동하는 기기이지만, TV가 없는 대기상태에는 온전히 스피커가 되는 것입니다. 모니터의 상단부만 노출되는 상태를 이들은 라인뷰(line view)라고 부르는 군요. 라인뷰 때는 시계, 음악, 날씨, 무드조명, 홈 대시보드가 됩니다. TV의 화면을 재정의 하니, TV는 새로운 물건으로 확장된다는 것을, LG는 보여주려고 하는 셈입니다. LG는 TV를 진화시키는 것을 넘어, 인간과 TV와의 관계를 진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간 것이죠.
# 공간을 돌려줬다?
LG 남호준 전무는 롤러블TV의 컨셉트와 관련해 "고객에게 공간을 돌려준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모니터가 차지하고 있었던, 빼도박도 못하는 큰 공간을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공간 가치'를 창조했다는 겁니다. 그는 이런 점에서 롤러블TV가 TV디자인의 의미있는 미래가 될 거라고 전망합니다.
즉 롤러블TV는 소비자가 필요로 할 때 필요한 만큼만 화면을 이용하는 TV로, 어떤 형태의 콘텐츠도 전체화면으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필요한 비율만큼만 화면을 뽑아올리면 된다는 얘기죠.
# 진화의 방향 - 롤러블태블릿?
롤러블TV는 지금껏 TV진화의 공식대로 화면을 더 키워나갈까요.
이 부분은 아직 전망하긴 어렵지만, 권봉석 사장은 태블릿과 같은 소형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에 적용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는 롤러블TV의 대형화를 언급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롤러블 기술을 확산해나갈 것임을 시사합니다. 롤러블TV의 화면이 더 커지는 뱡향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오히려 롤러블이 지닐 수 있는 강점인 휴대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깁니다. 즉, 롤러블폰과 롤러블태블릿을 개발해 기존제품과 달리 부피가 혁신적으로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화면이 크면서도 기동성이 좋은 제품 쪽으로 진화를 모색할 듯 합니다.
LG는 이번 제품이 "TV도 이런 형태도 취할 수 있다는 샘플을 보여드린 것"이라며 LG의 모색이 진행형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TV가 바닥에 붙어있는게 아니라 천장에 붙어있을 수도 있고 벽에서도 내려올 수 있다(롤다운)는 여러가지 형태의 변형이 가능함을 말하기도 하는군요.
# 삼성은 LG 롤러블TV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삼성에선 LG의 이 제품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합니다. 과연 TV라는 제품을 그렇게 돌돌 말아야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롤러블 디스플레이는 휴대성이 중요한 포인트인데, TV는 휴대하는 제품군이 아니며 또 LG가 만든 것 또한 휴대용이 아니라는 점을 거론합니다. 획기적으로 사이즈를 줄여 휴대할 수 있는 것이면 몰라도, 거실 등에 고정해놓는 제품을 굳이 뺐다 넣었다 하면서 이용하는 것이 상품적 매력이 있느냐는 지적입니다. 그냥 신기한 것 정도를 위해, 롤러블로 바꾸기에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아닐까요. 삼성은 그런 점에서, 이 제품이 살아남기에는 아직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은 듯 하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LG 스스로도 이런 약점을 의식해, 롤러블태블릿을 거론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스로 '샘플론'을 내세운 것도, 올레드 선두주자로서의 실험정신을 세계에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롤러블시대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또 CES에서 격찬도 받았으니 일단은 성공한 셈입니다.
# 대체 얼마예요?
65인치 TV모니터가 솟아올랐다 사라졌다 하는 묘기를, 집안에서 구현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체 얼마면 구매의욕이 일어날까요? LG에선 아직 미정이라고 말합니다. 롤러블TV는 올레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에 추가 원가가 들어가는 건 없다면서 비용 대비 수익 관점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지불할 수 있는 '가치'의 평가가 가격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LG롤러블TV는 올 2분기부터 국내 출시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당 가격은 5천만원 정도를 예상합니다. 삼성에서 아직은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근거 또한 저 엄청난 가격에 있을 것입니다. 5천만원을 들여, 모니터의 매직을 감상할 것이냐. LG의 고민을 고려한다면 가격이 좀더 현실적으로 낮아질 수는 있지만, 과연 고정적으로 놔두는 TV의 롤러블 기능에 소비자들이 그만큼의 돈을 쓸지는 지켜봐야할 일입니다.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TV문명을 새롭게 움직인 LG의 혁신DNA만큼은 세상에 각인시킨 점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면, 저거 한 대 거실에 놔두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요.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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