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김종삼 '북치는 소년'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는 가난한 아이에게 세상에 필요한 내용을 담지는 못할지 모른다. 그 카드에 담긴 것들이 어떤 의미인지 소년에게 전해지지는 못할지 모른다. 서양카드와 가난한 아이 사이엔 공유하는 내용이 없다. 하지만 그 낯선 배합이나 교차에서 서먹하지만 황홀하게 닿는 이물감 같은 것의 완전한 무엇이 있다. 그게 아름답다. 그게 내용도 없고 까닭도 없고 의미도 없이 푸르고 서럽게 아름다운 것이다.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내린 진눈깨비는 그 무방비의 짐승을 떨게 하는 자연의 엄혹이지만, 몇 송이 진눈깨비를 매단 양들의 등성이에 우연히 햇살이 비칠 때 그것들이 반짝이는 아름다움. 그것이 거기서 아름다워야 할 이유도 없고 경우도 아니지만, 그냥 거기서 문득 떨고 있는 양의 등성이에 찰나의 빛을 내놓는 진눈깨비 또한 맥락도 없이 그저 아름다운 것이다.
김종삼은 이 과묵한 언어들 속에, 저 상관 없는 객관적 상관물들이 그냥 나열되지 않았음을 숨겨놓고 있는지 모른다. 그 비밀이 이 시를 다시 전신으로 떨게 하는 핵심인지도 모른다.
북치는 소년은 크리스마스 카드 위에 그려진 그림이고, 소년 옆에 어린 양 몇 마리가 햇살 아래 꼬물거리고 있으며 등성이엔 진눈깨비와도 같아 보이는 반짝이가 두엇 붙어 있으며, 소년 김종삼은 어딘가에서 날아온 먼 나라의 알 수 없는 문자로 된 카드를 받아들고 그 안에 써놓은 글씨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래 황홀해하고 있었음을, 살아오며 바라본 모든 것들보다 아름답던 그 피상의 너울 속에 감돌던 아름다움의 찰나를 여기 기입해 놓았음을.
이빈섬(시인·이상국 논설실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