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11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19에서는 ‘자율주행’이 자동차를 넘어 전자와 IT, 통신 등 모든 산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주행에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완성차 업계에서는 이전처럼 완전자율주행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 보다는 고객들에게 실익을 줄 수 있는 기술을 고민하고 자율주행 상용화 시대를 대비한 ‘콘텐츠’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산업계, 자율주행 역할 찾기 분주
이런 상황에서 CES에 참가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다가오는 자율주행 시대에서 자신의 몫을 찾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삼성전자가 하만과 공동으로 개발한 디지털콕핏이 대표적이다.
IT업체의 자율주행 플랫폼 경쟁도 치열했다. 중국 바이두는 자사의 자율주행 플랫폼인 아폴로가 설치된 차량 3대를 선보였다. 퀄컴과 인텔, 엔비디아 등 반도체업체들도 각각 완성차업체와 손잡고 자율주행 기능이 적용된 자동차를 전시했다.
이 분야의 협업도 활발히 이뤄졌다. LG전자는 AI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SK텔레콤은 세계 최대 자동차 전장 기업인 하만, 미국 최대 규모의 지상파 방송사 싱클레어방송그룹과 손을 잡았다.
◆ 콘텐츠 중요성 강조, 다양한 협업 가능성 제시
이번 CES에서는 자율주행과 관련한 새로운 협업 가능성도 나타났다. 박일평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은 기조연설에서 “자율주행 시대 자동차는 교통수단이 아니라 움직이는 생활공간”이라고 규정했다. 자동차 안에서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게 일상화될 것이라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집이 수많은 ICT 기기의 각축장이 됐듯이 자동차도 그렇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완성차 업계는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한 콘텐츠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운전이 필요없는 자율주행 시대에 차량의 개념이 완전히 변화하는 만큼, 이동 공간으로서 차량의 의미에 집중하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을 이용한 ‘콘텐츠’에 집중한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물론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을 활용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특히 아우디는 디즈니와 협업해 만든 콘텐츠를 공개하며 눈길을 끌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CES에서 자동차 업계는 자율주행 상용화 이후 고객에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자율주행 기술 뿐 아니라 콘텐츠 분야에서 다양한 협업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완전자율주행 신중론… ‘안전’과 ‘고도화 혁신’에 방점
이번 CES에서 자율주행과 관련해 지속적인 비전을 제시하던 완성차 업계는 조금 달라진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특정연도까지 완전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는 틀에박힌 비전 발표에서 벗어나 자율주행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길 프랫 토요타 TRI 사장은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도요타 가디언의 본질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증폭시키는 것. 충돌 사고로 인한 십대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TRI는 자율주행 분야에서 완전자율주행인 ‘쇼퍼(chauffeur)’와 사고를 막는 ‘가디언’에 집중하는 투트랙 전략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완전 자율주행인 ‘쇼퍼’는 언젠가 할 것이지만 이 시스템이 정착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사고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난 1년간 토요타 가디언에 집중해왔다”고 설명했다.
완전자율주행보다는 ‘사고예방’에 중점을 둔 기술들의 고도화에 집중했다는 얘기다. 자율주행차의 사고발생 시 운전자와 자동차의 ‘책임’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만들어지기에는 충분한 논의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자동차 업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사장) 역시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남겼다. 그는 “자율주행 분야에서 지금 얘기되는 기술격차라던지 일부 회사의 파일럿 차량 전시 등에 큰 의미가 있지 않다고 본다”며 “그것보다는 실질적으로 고객이 우리 차량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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