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세 가지라고 한다. 우선, 구글·아마존 등 IT플랫폼들에 자동차산업 주도권을 뺏길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다. 둘째, IT업계의 초스피드 의사결정과 권한위임에 놀랐다. 셋째, 소프트뱅크는 30대가 의사결정을 하는데 도요타는 50대가 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등이라는 걸 몰랐던 애플이나 인텔의 상황도 비슷하다. 2007년 첫 아이폰 출시 이후 10년 넘게 성장일로였던 애플의 주가는 작년 말부터 크게 꺾이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둔화 등으로 실적 전망이 밝지 않아서다. 인텔은 경쟁업체들에 거세게 추격당하고 있다. PC기반 기술에 안주하고 스마트폰 및 사물인터넷(IoT) 관련 기술개발에 소홀히 했다가 그렇단다.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말 본사 회의 석상에서 “대마불사는 없으며 아마존도 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큰 기업들의 수명은 100여년이 아니라 이제 30여년"이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연초부터 세계적 대기업들부터가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세계적 경기침체 조짐 탓이 크지만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경영환경도 너무 급변하고 있는 탓이다.
한국기업들이라고 다를리 없다. 많은 중견·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업황 부진에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52시간 근무제 등으로 아우성이다. 수출 대기업들은 미·중 무역전쟁과 세계경제의 침체 조짐, 중국의 거센 추격에 따른 주력산업 쇠퇴, 각종 규제, 노사문제 등으로 과거보다 동력을 크게 잃고 있다. 또 중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를 따라잡았다. 이 때문인지 현대차, LG디스플레이, 롯데쇼핑 같은 탄탄하기 그지없던 5대 그룹 계열사들마저 현재 신용등급 하락위기라고 한다. 금융위기 때도 없던 초유의 현상이다.
위기 조짐이라면 도요타, 애플보다 이처럼 우리가 더 위기 조짐인 것이다. 그런데 대처 양상은 현저히 다르다.
우리 중소기업계에선 연초 일본으로 공장을 옮겼다는 2개 우량중소기업이 충격과 화제다. 일본보다 더 비싸진 인건비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기업 은퇴기술자들을 하루 7~8시간만 쓰면 품질과 효율은 한국보다 더 좋고, 인건비는 더 낮다는 것이다. 일본 은퇴기술자들은 임금이 낮더라도 소일거리가 있어 좋아한단다. 우리 같은 노사문제도 별로 없고, 일본정부에서도 호의적이라고 한다.
최근 대통령이 앞장서 기업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지만 과연 현 정부가 친기업·친시장으로 돌아섰는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 투자와 고용확대를 기업들에 요청하면서도 여건은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과연 바뀌었는지 더 두고봐야 한다면 현재 탈출로는 크게 세 가지다. 핵문제 해결로 북한시장이 활짝 열리든가, 미국·일본 기업들처럼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원천기술을 속속 개발하는 일이다. 또 반도체 등을 대체할 새 시장, 새 먹거리들을 활발히 개척하는 일이다.
북한시장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시급한 것은 원천기술 개발과 새 먹거리 창출이다. 중국이 추격하든,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이 어떻게 되든, 인텔이나 퀄컴처럼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는 원천핵심기술 몇 개씩만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부터가 원천핵심기술 투자보다 수율관리에 기반한 대량조립생산·판매 방식에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왔다. 핵심기술과 부품은 미국이나 일본업체에 거액의 로열티를 주고 사오고, 껍데기만 잘 조립해 양산해도 지금까지는 장사가 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대의 한 원로 공학자는 "기업들은 여전히 원천기술 투자를 소홀히 하고, 정부는 적폐청산·최저임금·근로시간 등으로 기업들을 계속 몰아붙이기만 한다면 5년 안에 제조업 공동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실업난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내수경제는 더 엉망이 될 것이다.
기업들은 연초부터 들려오는 세계적 대기업들의 위기론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에 자꾸 기댈 것도 없다.
언제 정부 도움으로 세계일류가 되었는가. 이제부터라도 각개격파 식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성장산업 발굴과 구조개혁에 올인해야 할 것이다. 이 기회에 경영방식, 생산방식도 모두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믿을 게 그나마 기업이라고, 우리 기업인들의 분발을 다시 촉구할 수밖에 없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