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신한은행 남산 3억원 의혹’의 재조사를 권고하면서 해당 사태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신한은행 남산 3억원 의혹 사건은 2010년 당시 신한금융지주의 ‘1인자’인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인자’인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을 횡령과 배임 혐의로 고발하면서 촉발됐다.
라응찬 전 회장은 은행업계 1위인 현 신한금융의 신화를 만들어낸 최장수 최고경영자다. 금융권에서 가장 오랫동안 은행에 몸담은 뱅커이자 신한 금융 4연임 회장으로서 라 전 회장의 역사는 곧 신한금융의 역사이기도 하다.
라 전 회장은 1982년 점포 3개, 임직원 279명으로 출발한 신한은행을 30여년 만에 은행·카드·보험사·금융투자 등 11개 계열사를 거느린 국내 대표 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재일동포 주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1991년 이후 19년 동안 신한금융의 최고경영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다.
특히 조흥은행과 LG카드 인수는 금융업계 인수·합병(M&A)에서 가장 성공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신한금융그룹 성장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도 절제된 리더십으로 세상은 그를 ‘겸손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최고경영자(CEO)’로 평가했다.
그러나 빛이 화려했던 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라 전 회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으로 수차례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를 벌이던 중, 2007년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50억원이 송금된 사실을 밝혀냈지만 불기소 처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0년에는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3억원의 뇌물을 줬다는 신한은행 남산 3억원 사건으로 역풍을 맞았다.
라 전 회장은 이 사건에 휘말려 신한금융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검찰은 고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의 경영자문료에서 3억원을 빼낸 혐의(횡령) 등으로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과 신상훈 전 사장을 기소했지만, 막상 이를 지시했다는 라 전 회장은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라 전 회장이 알츠하이머병을 이유로 세 차례에 걸친 소환 요구에 불응하자, 증인신청을 철회하고 추가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검찰의 소극적인 태도에 아직도 정·재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신한 사태를 언급할 때 라 전 회장만큼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위성호 신한은행장이다.
위 행장은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1985년 신한은행에 입행해 신한카드 사장을 거쳐 지난 2017년 신한은행장에 오르기까지 33년간 신한금융에서만 일한 전통 ‘신한맨’이다.
위 행장은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은행, 신한카드 등 주요 계열사를 거치면서 관리자로서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 특히 신한카드 사장 재임 당시에는 ‘코드나인’과 빅데이터 사업의 초석을 닦아 신한카드가 업계 1위로 안착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 행장은 대표적인 ‘라응찬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검찰은 위 행장이 남산 3억원과 신한은행 경영권 분쟁 사태 당시 임직원들이 라 전 회장에게 유리하게 위증하도록 한 것으로 보고 관련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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