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제유표-9] '근로기준법' 혁파하고 '노동기본법'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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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19-0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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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로기준법 명칭, 내용 등 문제 많아

  •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노사상생 위한 법 필요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일은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한 다음 이루어진다." <정도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전태일>
"노동기본법을 제정하라." <강효백>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40분경 서울 평화시장의 재단사였던 전태일(23세)은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2018년 12월 11일 오전 3시 20분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이던 김용균(24세)은 밤샘 일을 홀로 하다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 기계에 끼여 숨졌다.

50년 전 꽃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가 죽음으로 외쳤던 노동자 차별철폐의 구호는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맑고 꿈 많은 청년 김용균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유효함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극을 내장한 유효함이다. 지금 노동자의 현실이 50년과 비교해 전혀 달라진 게 없으며 근로기준법 등 열악한 노동법제를 개혁하지 않는 한 제 2,3의 전태일과 김용균은 속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국가의 실력은 그 국가의 법제에서 나온다. 한·중 양국이 각각 세계수출 5대국과 세계 최대 외자유치국이 된 비결 중 하나는 한국은 헌법 제125조 (대외무역 장려조항), 후자는 중국헌법 제18조(외자유치 장려조항)을 비롯한 비교적 잘 정비된 제도적 인프라 덕분이다.

하지만 세계 제2위라는 종합국력에 걸맞지 않게 낙후한 중국의 인권과 환경 상황 역시 유독 낙후한 중국의 인권법과 환경법 분야에서 나온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열악한 노동과 고용 상황 역시 열악한 노동법 분야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참고로, 한국은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 길이는 3위 최상위권, 고용률과 삶의 질은 각각 22위 하위권, 29위 최하위권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한국 노동법제의 기본법격인 ‘근로기준법’은 그 명칭과 내용 모든 면에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첫째, 근로기준법의 명칭이다. 노동과 근로는 어떻게 다를까? 흔히 노동은 몸을 사용하는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일들을 떠올린다. 반면, 근로는 사무직, 전문직 등의 육체노동이 아닌 일들을 떠올린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즉 우리의 생각과 달리 육체적, 정신적 노동, 이 모두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의 단어이다.

이와 달리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을 뜻한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①의 3에는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 개념 정의가 표준국어대사전의 그것과는 정반대다. 법전의 용어 정의가 국어사전의 용어 정의보다 우선하는가? 법률용어는 일반인이 아닌 특수인, 또는 외계인이 별개로 사용하는 용어인가?

사용자와 근로자, 사용자는 가치중립적 용어인데 왜 근로자 한쪽에만 가치개입적 수식어인 ‘부지런할 근(勤)’을 붙여 부르는 것일까?

구한말부터 1961년 5·16 군사 쿠테타까지 ‘노동’, ‘노동자’ 용어가 주류 용어였는 반면, ‘근로’, ‘근로자’는 극히 드물게 쓰였다. 1920년 4월 1일부터 1945년 8월 31일까지 두 용어의 언론 노출 빈도를 보면, 노동자는 10만5806건, 근로자는 99건건으로, 언론이 노동자라는 용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1970년 12월 1일부터 1987년 6월 30일까지 두 용어의 언론 노출 빈도는 노동자가 9046건, 근로자가 2만3156건으로 역전된다. 이 기간 언론에서 근로자가 ‘주류 단어’로 부상했다.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


1963년 박정희 정권은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통해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꿔버렸다.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는 사람’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 산업화를 위해 근면하게 일하는 산업 역군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한국에서 주류 용어였던 노동자가 근로자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레드 콤플렉스’가 생성되었다. ‘노동자=빨갱이’라는 악마의 프레임을 통해 노동자라는 용어 사용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박정희 정권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장치였다.

그 후 강산이 5번 이상이나 바뀌는 긴 세월이 흘렀다. 2017년 5월 10일 당선과 동시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을 국정철학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인 김영주 장관은 재임기간 내내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고 표현했다. 2018년 3월 29일, 청와대는 헌법에 명시된 '근로'라는 용어를 개헌을 통해 다시 '노동'으로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해 9월 취임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용어를 부쩍 자주 쓰며 급격히 과거로 회귀하는 역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상은 시간(역사)의 흐름에 따라 살펴본 법사학적 고찰이다. 이제 공간(지리)의 비교법학적 고찰을 해보자.

지구촌 사회 각국의 노동기본법은 어떠한가?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은 '勞動法(노동법)', 일본은 '勞働基準法(노동기준법)', 대만은 '勞動基準法(노동기준법)', 베트남도 'luật lao động (勞動法, 노동법)'이다. 물론 법조문과 실생활에서도 ‘근로’ , ‘근로자’라는 없고 ‘노동’, ‘노동자’만 있다.

비단 한자문화권 국가뿐이 아니다. 영어와 중국어가 공용어인 싱가포르의 노동기본법은 'Employment Protection Act(고용법)', 미국은 'Fair Labor Standard Act (공정노동기준법)', 호주는 'Fair Work Act(공정노동법)', 스웨덴은 'Employment Protection Act(고용보호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입법례는 ‘근로’ 아닌 ‘노동’을, 노동과 고용에서의 ‘공정’과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의미의 ‘보호’를 노동기본법의 명칭에 담고 있다. 한국처럼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사용자 입장에서의 ‘근로’( 영어로 직역하자면 hard work, diligent work)라는 용어를 쓰는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둘째, 근로기준법의 내용이다. 뭐라도 그렇지만 명칭보다 중요한 건 내용이다.  누가 필자에게 70년 한국법제사 중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개악된 대표적 법률 하나만 들라면 서슴없이 1997년 제정 근로기준법을 들겠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997년 3월 13일 기존의 법을 폐지하고 제정한 법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근로기준법은 1953년 5월 10일에 제정되었다. 그 법에는 노동자에게 연차, 월차, 생리휴가, 공휴일 휴무, 주휴일등의 휴일 및 휴가가 주어지고 이들이 모두 유급 휴가인 등 현행 근로기준법보다도 좋은 규정들이 여럿 있었다. 1993년 8차 개정까지 점차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었다.

그러나 1996년 12월 26일 이른바 ‘노동법 개정 날치기’ 사태로 인하여, 개악된 현행 근로기준법이 등장했다. 그간 꾸준히 개선해왔던 법정 노동조건 중 거의 대부분이 퇴행해버렸다. 일주일 평균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노동자에겐 유급휴일규정이 아예 적용되지 않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시간이 탄력적으로 길어지더라도 임금은 동일하게 초과시간 노동을 조장했다. 파견근로제는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를 야기하는 단초가 되었다, 정리해고제는 IMF 당시 사측이 회사의 재량에 따라 대량의 정리해고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법정 공휴일도 구법에는 유급휴일로 간주했으나, 무급휴일로 전환되었다. 2003년 개정시에 경영계의 반발로 월차유급휴가 제도가 폐지되었고, 동시에 여성의 생리휴가가 유급에서 무급으로 변환되었다.(1)*

이외에도 현행 근로기준법의 법조항 행간마다 용어마다 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면 관계상 한 개 조항만 들겠다. 근로기준법 제64조(최저 연령과 취직인허증) ① 15세 미만인 자(「초ㆍ중등교육법」에 따른 중학교에 재학 중인 18세 미만인 자를 포함한다)는 근로자로 사용하지 못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급한 취직인허증을 지닌 자는 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법조항의 입법 취지는 극소수 아역 배우와 탤런트 등을 위한 것이겠지만 일국의 노동법제의 기본법격인 근로기준법(국제노동기구(ILO)등 세계만방에 공개됨)에 이 조항을 삽입한 건 한국이 “15세 미만의 어린이에게도 노동을 시키는 나라” 라는 끔찍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는 위험한 규정이다. 백번 양보해서 다른 법제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의 한 귀퉁이에 구체적 제한적 예시를 들어 규정했어야 했다고 판단한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모름지기 사회적 약자층을 배려해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 즉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차등이 허용되는 사회이며 이러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생겨난 대표적 법 영역이 바로 노동법이다.

노동법의 존재 이유가 갑(사용자)과 을(노동자) 간의 실질적인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을에게만 부지런히 일하는 노동자(근로자)라는 의미의 족쇄를 채우는 법률, 오히려 을에게만 부지런히 일하는 노동자라는 의미의 족쇄를 채우는 법률 스스로 배임상태에 빠져 있다.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인 사용자의 갑질을 정당화해주는 ‘근로자’를 공식 용어화함으로써 자신한테 필요한 ‘모범 근로자’ 양성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종속적인 의미를 지닌 근로자라는 용어는 사용자에게 갑질을 유발하는 격이다. 진정 사용자는 기계와 같이 부지런히 일하는 근로자만 진정한 노동자로 취급하는가.

우등생만 학생인가? 부지런한 노동자(hard worker), 즉 근로자만 노동자인가? 노동자를 근로자라 칭하는 건 우등생만 학생으로 취급하는 거와 같은 노골적인 반민주적 반시대적 반인류적 갑질 용어라고 생각한다. 새 왕조 조선의 설계자라고 불리는 삼봉 정도전은 “일은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한 다음 이루어진다”고 했다. 명칭은 실체의 함축적 표현이기에 명칭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노동 논중은 ‘노동’과 ‘노동자’라는 명칭을 복권시키는 ‘정명’(正名)에서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명칭이나 내용 면에서 심각한 배임 상태에 빠져 있는 현행 근로기준법을 혁파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게끔 노사간의 실질적 대등 관계와 노사 상생을 위한 새로운 '노동기본법'을 제정·시행할 것을 제안한다.(2)*


◆◇◆◇◆◇주석

(1)*2018년 3월 20일 법정 근로시간을 행정해석에 따라 68시간까지 두던 것을 원천개정하여 명문대로 52시간으로 제한하게끔 개정하였다. 이러한 주 52시간 노동제 시행 덕분에 지난해 우리나라 취업자의 주당 평균 취업시간이 전년보다 1.3시간 줄어든 41.5시간을 기록함으로써 OECD국가중에서 노동시간이 긴 나라 순위 1위~2위의 불명예를 다투던 상황에서 3위를 차지하여 약간 호전되었다.

(2)*상법(회사법)은 회사원도 참고로 알 필요가 있지만 주로 경영인이 알아야 하는 법이다.
반면에 노동법은 경영인과 회사원은 물론 구직자 해직자 휴직자 창업자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하는 법이다. 한데 우리나라에서 상법(회사법)은 변호사시험 필수과목인 반면에 노동법은 7개 선택과목중의 하나 일뿐 지 않는다. 이런 노동법 홀대는 사법고시 시절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노동법을 노동자의 권익보호 차원에서 상법처럼 변호사 시험의 필수과목으로 정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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