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 '포스트 차이나'에서 '한반도 평화의 장'으로 부상할 준비를 하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 말 제2차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공식화하면서부터다. 하와이, 태국 방콕, 싱가포르 등과 함께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베트남은 특히 유독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북한과 미국에 있어 지리적·외교적으로 가장 부담이 없는 중립적인 성격을 띤다는 평가도 나온다.
◆외교적으로 중립적 성격··· 지리적으로도 유리
베트남이 유력한 개최지로 언급되는 배경으로는 접근성과 상징성이 꼽힌다. 홍콩 인터넷 매체인 아시아타임스는 "제1차 북·미 회담이 열렸던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베트남도 하노이에 북·미 양국 대사관을 두고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며 "북한과의 항공 이동 거리는 약 4000㎞로 북한과도 멀지 않아 외부 이동에 민감해하는 김 위원장의 이동에 부담이 적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과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 종결 이후 20년을 맞은 1995년에 국교를 정상화했다. 2000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베트남 전쟁 이후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고, 2015년에는 베트남 최고 지도자인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현 국가주석 겸임)이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현재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북한과도 전통적인 우호 관계였지만 2017년 2월 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일시적으로 악화됐다. 용의자 중 한 명이 베트남 여성이었던 탓이다. 그러나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작년 11월 베트남을 방문해 농업과학원 등을 시찰하고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와 고위급 회담을 가진 것을 계기로 극적으로 화해했다. 수십년간 쌓인 북·미 양국의 적대감과 불신을 해소하기 적당한 지역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베트남은 북한의 경제 정책 선행 모델로도 주목받고 있다. 1986년 경제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Đổi Mới)' 정책을 도입한 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외국인직접투자(FDI)를 7% 이상 끌어올리면서 높은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에 깊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일본 산케이신문은 분석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2006년 하노이에서의 정상회담에서 베트남 상황을 토대로 '새로운 북한 이니셔티브'를 시사했었다. 작년 8월 하노이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도 기회를 잡는다면 '베트남의 기적'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완전한 비핵화 수용을 촉구했다.
◆하노이·다낭 등 개최 도시 주목··· "베트남, 중국 견제 목적"
회담을 유치할 경우 개최 도시로는 수도 하노이와 다낭이 거론된다. 김 위원장 전용기의 항속거리 등을 고려할 때 최적이라는 것이다. 작년 3월 제1차 북·미 회담의 개최 예정지로 맨 처음 베트남이 거론되던 당시, 부민꾸옹 싱가포르 공공정책대학원 부교수는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라며 "북·미 양측 모두에게 가치있는 전략적 움직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다낭이 유력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다. 회담 일정이 2월 말로 정해지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긴 데다 정보보안과 경호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낭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번성했던 항구 도시로, 베트남에서 넷째로 큰 도시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가 건설되기도 했으나 전쟁 이후 인프라 작업을 통해 휴양 도시로 발전했다.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국제 행사를 치렀던 점도 다낭의 매력으로 꼽힌다. 201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 당시 트럼프 대통령도 다낭을 방문했다. 제2차 북·미 회담이 열릴 경우 양국 대표단과 각국 미디어 관계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는 면에서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완벽한 보안을 담보할 수 있는 경호 능력과 이동 편의성, 교통 등의 조건을 두루 갖춘 하노이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베트남 정부는 지속적으로 북·미 회담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작년 11월 말에는 베트남을 공식 방문한 리용호 외무상에게 회담 유치 의사를 밝힌 데 이어 12월 초에는 응우옌티낌응언 베트남 국회의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북·미 회담의 베트남 유치를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산케이신문은 베트남이 이번 회담 유치를 계기로 중국 견제를 본격화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과 남중국해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베트남은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군사비 지출을 2배로 늘렸다. 오랫동안 중국과 앙숙 관계였던 베트남으로서는 제2차 북·미 회담을 개최하면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오퉁 베이징 글로벌정책연구소 연구원은 "한때 고립돼 있던 베트남은 현재 성장 가능성을 갖고 국제사회와 상호 연결돼 있다"며 "대북제재로 경제 활동에 제약을 받는 북한의 최대 우방국인 중국도 이번 회담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SCM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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