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좌파 포퓰리즘 정권이 종식의 기로에 서있다. 니콜라스 마두로(57) 대통령의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친정부 지지 집회가 연일 열리며 베네수엘라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으로 한 동안 잘 나가던 베네수엘라는 지난 20년 동안 급진적 좌파 정권이 이어지면서 이제 남미의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물가 상승이 100만 퍼센트에 달하고 식량과 의약품 부족은 극도로 심각하다. 경제 위기와 정국 혼란에 못 이겨 지난 수년 간 300만 명의 청년들이 고국과 부모 곁을 떠났다. 2014년과 2017년에 발생한 대규모 소요 사태는 급진적 좌파 정책의 가장 큰 희생자인 중산층이 주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좌파 정권을 지지했던 노동자. 서민 계층까지 반정부 투쟁에 합류하면서, 휴고 차베스 대통령의 후계자인 마두로 대통령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려있다.
여기다가 23일(현지시간) 미국에 이어 브라질 등 남미의 우파 국가들이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며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35살의 젊은 야당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인정한다고 까지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성명을 통해 "과이도 의장을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한다"며 "다른 서방 국가들도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곧이어 북미의 캐나다와 브라질, 칠레, 페루, 파라과이, 콜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 중남미 우파 정부들도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 미국 행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마두로와 그의 일당의 미래는 사라졌고 이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통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그러나 마두로는 미국과의 정치·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미국 외교관들에게 72시간안에 베네수엘라를 떠날 것을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23일 자신의 지지자들 집회에 나타나 "베네수엘라는 해방자들의 나라"라고 강조하고 미국의 침략주의를 맹렬히 비난했다.
미국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한 마두로 정권은 야당 지도부와 시위대에 대한 강경 대응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국이 반정부 시위의 중심에 서있고 대표적 ‘친미(親美)’ 인사로 분류되고 있는 과이도 국회의장의 체포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마두로의 야권 탄압과 시위대 폭력 진압 등에 맞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석유 부문 제재를 들고 나올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경제가 이미 멍들대로 멍든 베네수엘라에 큰 압력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이다.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혼란이 외부 세력의 압력보다는 국민들의 의지와 행동에 따라 해결될 수 있는 기회도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새로운 인물' 과이도 국회의장이 국제사회에 크게 부각되면서, 그가 분열 양상을 보이던 베네수엘라 야권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인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평범한 야당 의원에서 이달 초 국회의장직에 오른 과이도는 이달 10일 두 번째 6년 임기를 시작한 마두로 대통령 '권력 강탈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를 비롯한 야권은 지난해 5월 대선 야권 유력 후보들이 가택 연금이나 수감 등으로 선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재선거와 함께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23일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과이도는 스스로 임시 대통령을 맡겠다고 선언,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자유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위대는 그를 향해 환호했고, 거리에서는 베네수엘라의 국가가 울려 퍼졌다. 이날은 1958년 베네수엘라에서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 독재 정권이 대중 봉기로 무너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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