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가 극도의 정국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재점화됐고 야권 대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스스로를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했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과이도 의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결사 항전 자세를 분명히 했다.
베네수엘라가 극도의 혼돈에 빠진 근본 원인은 경제에 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장기간 정정 혼란과 정책 실패로 인해 경제는 수습이 불가한 지경에 이르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마두로 집권 후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연간 2만4000%까지 높아졌다. 볼리바르화 가치가 자유낙하했고 정부가 내놓은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조치는 초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악순환을 았다. 굶주림과 의약품 부족 속에서 나라를 등지고 떠난 난민이 300만 명을 넘는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전망도 밝지 않다.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은(IMF)은 올해 베네수엘라 경제규모가 5%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했다. 물가상승률은 1000만%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마두로 대통령은 2013년 암으로 숨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바통을 이어 집권했다. 차베스 시절 베네수엘라는 남미 좌파 맹주를 자처했으나 마두로가 집권한 뒤 정정불안 속에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동주의 포퓰리즘을 내세운 차베스 정권의 헤픈 씀씀이로 재정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2014년 중순 이후 국제유가 급락세로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미국와 유럽연합(EU)의 제재가 가세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붕괴를 향해 치달았다.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잇따랐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2017년 제헌의회를 꾸려 독재권력 강화에 치중했다. 지난해 5월 치른 조기대선에서 승리해 지난 10일 6년간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지만 부정선거 의혹을 받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우파 국제사회는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마두로의 퇴진을 요구해왔다.
주춤하던 베네수엘라에서의 반정부 시위는 최근 들어 다시 격화되기 시작했다. 23일에는 수십만 국민이 수도 카라카스에서 마두로 퇴진을 위한 가두 행렬을 벌였다.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의 군부 독재를 종식한 쿠데타 61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야권 대표 과이도 국회의장은 이 자리에서 자신을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했다. 베네수엘라는 이제 두 명이 대통령을 자처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23일 성명을 내고 과이도 의장을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했다. 캐나다와 유럽연합(EU)가 동참했고 남미에서 친미 동맹 결성을 선언한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파라과이, 페루도 과이도 의장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반미의 성지로 통하던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이 흔들리면서 남미 좌파 동맹의 몰락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카라카스 대통령궁에서 지지자 결집을 호소하는 한편 좌파 정부의 몰락을 부추기는 게 미국이라면서 미국과 단교를 선언했다. 그는 "헌법에 따른 대통령으로서 제국주의 미국 정부와 정치·외교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다며 72시간 안에 모든 미국 외교관에게 떠날 것을 명령했다.
지금까지 베네수엘라 군부는 마두로 대통령의 편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군부 주요 인사들에 대한 경제 제재를 통해 군부의 변절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제재 관련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제재로는 베네수엘라산 원유나 화학제품 수입 금지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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