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되찾겠다는 목표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모의고사에서 아시아 1등이라고 큰소리를 쳤으나, 정작 본고사에서는 8등에도 들지 못했다. 대표팀은 예상 밖 조기 탈락으로 비행기표도 구하지 못해 귀국이 이틀이나 늦어지는 웃지 못 할 해프닝까지 겪었다.
빈 수레가 요란했다.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우승후보라고 자처한 벤투호는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됐던 카타르에 덜미가 잡혀 4강 진출이 좌절됐다. 1960년 이후 59년 만의 우승은커녕 2004년 중국 대회 이후 15년 만에 나온 최악의 성적표다. 결과도 참담했지만,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벤투호의 예고된 ‘아부다비 참사’는 3년 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본선행마저 걱정해야 할 숙제를 안겼다.
▲ 자충수 둔 ‘손흥민 사용법’의 오류
이번 대회에서 벤투호의 가장 큰 화두는 ‘캡틴’ 손흥민이었다. 소속팀 토트넘의 일정 탓에 뒤늦게 합류하면서, 손흥민만 있으면 우승까지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장거리 비행으로 휴식이 거의 없던 손흥민의 체력과 컨디션 난조를 해결해야 했다.
정작 중요한 토너먼트에서 손흥민의 몸은 무거웠다. 손흥민은 이렇다 할 활약 없이 짐을 싸고 토트넘으로 돌아갔다. 준결승까지 이란, 일본을 피하기 위해 ‘손흥민 카드’를 꺼낸 벤투 감독의 자충수였다. 한국은 4강에 오른 이란과 일본을 만날 실력도 되지 못했다.
▲ 고집불통 벤투 감독의 ‘손바닥’
“오늘 한국 라인업이 어떻게 돼?” 이번 대회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축알못’(축구를 알지 못한다) 취급을 받았다. 벤투 감독의 뻔한 전술 때문이다. 아무리 강팀이라도 A매치에서 상대 팀에 따라 전술과 전략의 변화는 승패를 좌우한다. 그런데 벤투호는 상대 팀 사령탑에게는 ‘손바닥 위의 한국’이었다.
벤투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4-2-3-1 전형을 고집했다. ‘이름값’에 의존한 선발 라인업의 변화도 거의 없었다. 어쩌다 라인업에 변화가 생긴 경기는 부상 선수가 발생했을 때였다.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은 얼마나 편했을까. 골문을 틀어 잠그고 역습으로 한 골만 넣으면 이길 수 있는 팀이었다. 세계 정상급 공격수 손흥민을 보유하고도 한국의 창은 무뎠다.
벤투 감독은 ‘지배하는 축구’를 표방했다. 골키퍼 김승규부터 시작되는 ‘빌드업’이 벤투호의 축구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참가국 가운데 가장 높은 점유율(69.0%)을 기록했다. 볼 터치(3341개)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득점은 6골에 불과했다. 백패스가 주를 이루는 허울뿐인 점유율 축구는 지루했고, 효율성은 최악이었다. 공만 돌리다 끝난 셈이다. 가장 많은 패스를 시도한 선수가 골키퍼 김승규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세계 축구의 대세는 ‘실리 축구’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스페인의 몰락을 부른 ‘점유율 축구’를 고집했다. 대회를 마친 벤투 감독은 “앞으로도 우리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카타르 투 카타르…세대교체의 ‘빌드업’
카타르에 패해 ‘아부다비 참사’를 겪은 한국은 다시 카타르를 바라봐야 한다. 3년 뒤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이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 의사를 밝힌 기성용과 구자철, 은퇴를 고민하는 이청용은 이제 잊고 새 판을 짜야 한다. 전성기가 지나고 있는 이들의 3년 뒤 기량은 보장할 수 없다.
1992년생 ‘동갑내기’ 손흥민과 황의조가 대표팀의 중심으로 이끌 때가 됐다. 지난해 부상으로 월드컵과 아시안컵 등 두 차례 좌절을 맛본 권창훈과 황희찬, 황인범, 김민재 등도 세대교체의 핵심 멤버들이다. 또 기대주로 꼽히는 해외파 정우영, 이승우, 백승호, 이강인을 비롯해 국내파 이진현, 한승규 등 새 얼굴들을 찾아 키워내야 한다. 벤투 감독이 바뀌지 않는다면, 3년 뒤 ‘영건’으로 위기의 한국 축구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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