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우성, '증인'이라는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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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9-01-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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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증인'에서 순호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현장은 배우에게 가장 좋은 휴식처이자 안식처예요. 하지만 꽉 쥐면 쥘수록 피로가 쌓이는 캐릭터들이 있어요. 긴장해야 해서요. 그런데 '증인' 속 순호는 달랐어요. 저도 모르게 '힐링'이 되더라고요."

영화 '증인'(감독 이한)은 유력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순호'(정우성 분)가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 분)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최근 영화 '아수라', '더 킹', '강철비', '인랑' 등 강렬하고 거친 작품·인물을 그려냈던 배우 정우성(46)은 이번 작품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고. 순수한 소녀 지우를 통해 성장하고 변화한 것은 비단 순호뿐만이 아닌 듯했다.

"지난 몇 년간 센 영화, 센 캐릭터를 하다 보니 '증인' 시나리오를 받아 읽었을 때 치유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 따뜻함이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 '증인'에서 순호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우성이 연기한 순호는 유력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변호사다. 한때는 민변계 파이터로 불렸지만 현재는 현실과 타협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를 증인으로 세우려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지우와 소통이 쉽지 않자 순호는 그의 세계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순호는 '타협'한 중년의 남자예요. 기성세대가 실리와 합리라는 그럴싸한 단어를 앞세워 타협하곤 하는데 그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거든요. 그런 인간적 갈등을 가진 순호가 다른 인물들을 만나며 교감을 나누는데,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온도'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정우성의 말처럼 순호는 많은 인물과 '관계'를 맺고 그로 하여금 다양한 모습과 온도를 가지기도 한다. 정우성은 그중에서도 "아버지와 순호의 관계성을 가장 좋아한다"며 두 사람으로 인해 가슴이 따뜻해졌다고 털어놓았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닿았던 건 아버지와의 일상이었어요. 사실 그 안에 놓인 당사자는 (부모님의 사랑을) 몰라요. 제삼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 관계 안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거예요. 타자로서 (관계를) 보게 되니까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모습이 아름답더라고요."

영화 '증인'에서 순호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담백하면서도 따뜻한 시선과 감성. 이는 이한 감독의 장기이기도 하다. 영화 '완득이'(2011), '우아한 거짓말'(2014), '오빠생각'(2016) 등 다수의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인간적인 감정은 오래도록 배우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 감독님의 영화가 따뜻한 건 그의 개인적 성향도 있다고 봐요. 타고난 인품이 따뜻하고 곧거든요. 잔잔하면서도 강요하지 않는 담백한 아름다움을 계속해서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잔잔하면서 강요하지 않는 담백함'은 영화 '증인'의 강점이기도 하다. 자폐 소녀와 변호사의 관계나 진실을 따라가는 과정은 과하거나 자극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지우의 증언을 끌어내는 법정신 또한 마찬가지.

"법정신도 '너무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많았어요. '극적인 것'을 경계했죠. 실제 재판 과정도 사실은 더 담담하고 감정이 섞이기 마련이잖아요.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너무 과하게 표현함으로써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보태거나 덜지 않고 정직하게 '감정'을 전달하는 건 배우들의 몫이었다. 정우성은 "(김)향기가 있었기 때문에 순호의 감정 또한 끌어낼 수 있었다"며 현장에서 즉각적인 리액션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순호와 지우의 관계를 설정하지 않고 늘 현장에서 느껴지는 그대로를 연기했어요. 지우를 바라보며 느껴지는 감정이 순호에게 미치는 영향이라고 판단했거든요. 지우의 순수한 표현들을 보고 저 역시도 다양한 반응을 할 수 있었어요. 순수함이 미치는 영향의 힘을 고스란히 받았고 그로 인해 성장할 수 있었죠."

앞서 정우성과 김향기는 17년 전 모 제과점 CF를 통해 인연을 맺었던 바. 당시 모습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떠돌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 CF가 연결 고리인 건 사실이지만 당시 향기와 지금의 향기씨는 전혀 다르죠. 저도 그 소식을 듣고 '아, 그런 인연이 있었구나!'고 깜짝 놀랐었지만 (김향기의) 작품을 보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지는 않았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싶기도 하고요. 당시는 아기였지만 현재는 향기씨가 마냥 어려 보이지 않고 동료 배우로 느껴져요. 또 (김향기도) 프로이기 때문에 향기씨를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는 '우아한 거짓말', '신과 함께' 등 김향기의 작품을 보며 "눈빛이 깊은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눈빛이 깊어서 조숙한 생각을 가졌을 거로 생각했어요. 실제로도 진지하고 사고가 성숙하더라고요. 이 영화, 캐릭터가 사회에 노출되었을 때 영화 외적으로 불러일으킬 우려 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주 바람직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요."

영화 '증인'에서 순호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동안 '증인' 같은 장르를 만나기도, 보여주기도 힘들었다"는 정우성에게 왜 '지금'에서야 '증인' 같은 작품이 나오게 된 것인지 물었다.

"제 생각엔 어떤 영화, 장르가 쏟아져 나오는 시류가 있어요. 그 '시류'라는 건 시대의 요구를 담는 거로 생각하거든요. 아마 앞으로는 이렇게 인간 본연의 모습, 자신을 돌아보고 또 보듬어줄 수 있는 영화가 많이 나올 거로 생각해요.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당사자들이니. 나 자신을 보듬고 싶기도 하고, 그런 게 요구되는 시대니까요."

작품을 바라보는 정우성의 '시야'도 더욱 넓어진 듯했다. 배우로도, 감독으로도 활약 중인 정우성이니만큼 "연출하게 될 작품의 방향도 이런 쪽인가"하고 질문했다.

"글쎄요. 캐릭터 안에서의 의미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 건 충분히 담으려고 하는 거 같아요. 올해는 꼭 감독으로 (연출)하려는 작품이 있어서요. 올해 시작하면 내년에야 선보일 수 있을 거 같아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증인'을 기다리는 예비 관객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우리 영화가 '따뜻하다'는 말로 홍보가 되고 있는데 이 '따뜻하다'는 말이 감정을 강요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여백 안에 보는 사람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담담함 안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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