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베이징 남서쪽 100㎞ 지역에 40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짓고 있는 국가급 특구 '슝안신구'.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서 '천년대계', '국가대사'라며 2017년 4월 개발계획을 발표한 일종의 계획도시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만든 선전특구, 장쩌민(江澤民)이 만든 상하이 푸둥신구에 이어 시진핑이 만들 슝안신구엔 ‘시진핑 도시’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조성계획이 발표된 지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곳은 아직 허허벌판이다. 기반시설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고, 재정적 지원도 미흡한 실정이다. 중국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기업의 이전을 강조했지만 국유기업, 대학, 병원, 연구기관 이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업 진척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고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최근 보도했다.
2년 전 슝안신구 계획이 발표됐을 때 전 국민의 관심사가 온통 이곳에 쏠렸던 것과 비교된다. 당시엔 전국 각지 부동산 투기꾼이 일제히 이곳에 몰려들어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 주석의 포부에도 불구하고 슝안신구 개발 계획에 대해 학계에서 광범위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데다 사업 타당성 연구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일각에선 중국 지도부가 도시개발 계획을 졸속으로 대충 만든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구쑤 중국 난징대 교수는 "도시계획·경제·환경 전문가들 사이에서 슝안신구에 대한 논란의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특히 기업인들은 슝안신구 위치, 환경문제, 사회·경제적 비용에 우려를 갖고 있다"며 "이것이 바로 슝안신구 개발 초기에 관심 있었던 투자자들이 하나 둘씩 여기를 떠난 이유"라고 전했다. 슝안신구가 자리한 수도권 지역은 중국에서 가장 대기 오염이 심각한 지역 가운데 하나다. 과연 혁신기업이나 외국인 투자기업이 이곳에 자리를 잡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는 지적이다.
또 슝안신구는 시 주석이 직접 추진하는 사업으로, 중국 지도부가 얼마나 공을 들이느냐에 사업 진척 속도가 달려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다시 말하면, 시 주석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는 의미다. 시 주석이 최근 미·중 무역전쟁, 경기둔화에 대응하는 데 온 정신을 쏟다보니 슝안신구 개발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시 주석은 지난 16일 약 2년 만에 슝안신구를 다시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국유기업이든 민영기업이든 너나 할 것 없이 천재일우의 발전 기회를 잡아 휘황찬란한 업적을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인 24일엔 슝안신구에서 시행될 32가지 개혁개방 조치도 발표됐다. 이를 두고 SCMP는 "시 주석이 슝안신구의 지지부진한 개발 속도를 참지 못해 조바심을 냈다"고 꼬집었다.
한편 중국 지도부가 첨단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도 미·중 무역전쟁의 역풍을 맞았다.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통해 중국은 본래 오는 2049년까지 첨단 제조업 경쟁력을 갖춰 미국을 넘어 세계 제조업 강국의 선두적 위치를 점하는 게 목표였다. 사실상 중국의 미래 국가 핵심경쟁력과 직결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금융지원을 통해 바이오, 의료, 항공우주, 반도체 기계, 정보통신(IT), 로봇 등 첨단산업을 키울 경우 미국이 따라잡힐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제조 2025'를 정조준해 '중국이 기술 도둑질을 하고 있다', '정부가 불공정 개입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24일 중국이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무역협상 타결이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단 중국은 한발 물러서 '중국제조 2025' 전략을 일부 수정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지만 무역전쟁이 사실상 미래 핵심기술을 둘러싼 '기술냉전'인 만큼 중국 지도부가 과연 '중국제조 2025' 전략에서 얼마나 물러설지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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