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전날 밤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현직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 빈소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역사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김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상을 마친 뒤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손영미 쉼터 소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조금만 더 사셨으면 3·1절 100주년도 보시고, 북미 정상회담도 열려서 평양도 다녀오실 수 있었을텐데"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23분 남으셨다. 한 분 한 분 다 떠나가고 계신다"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떠나보내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이 고향인 길원옥 할머니에게 "오래오래 사시라"고 했고, 길 할머니는 "늙은이가 오래 살면 병이고 젊은이가 오래 살아야 행복이지"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함께 오래 살면 되지 않느냐, 젊은 사람들이 부족한 게 많으니 어르신들이 이끌어주셔야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우리 어머니 고향은 흥남이다. 저는 남쪽에서 태어나 고향에 대한 절실함이 덜하지만 흥남 출신들은 모여서 고향생각을 많이 한다"며 "이산가족들이 한꺼번에 다 갈 수는 없더라도 고향이 절실한 분들이라도 먼저 다녀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향은 안 되더라도 평양, 금강산, 흥남 등을 가면서 반소원이라도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윤 이사장은 "(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도 말씀을 많이 하셨다. '끝까지 해달라', '재일 조선인 학교 계속 도와달라'고 하셨고 '나쁜 일본'이라며 일본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아울러 "'김정은이 빨리 와야 한다. 김정은이라고 새겨진 금도장으로 통일문서를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조문을 마치고 빈소를 나서며 방명록에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십시오'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의 이날 조문은 반한감정을 조장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정부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앞서 페이스북을 통해 "역사 바로세우기를 잊지 않겠다.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자 스물세 분을 위해 도리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1993년 할머니의 유엔 인권위 위안부 피해 공개 증언으로 감춰진 역사가 우리 곁으로 왔다"며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용기를 갖게 됐다"고 적었다.
이어 "할머니께서는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고 일제 만행에 대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며 역사 바로잡기에 앞장섰다"며 "조선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다른 나라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연대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는 일에 여생을 다하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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