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 차리기, 정해진 것 없다? 물 한 그릇만 떠놓고 지내기도

[사진=아이클릭아트]


5일 설날을 맞아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집안마다, 지방마다 전해 내려오는 방식이 달라 의견이 분분한 상황을 반영한 모습으로 보인다.

차례는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의 일종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제사가 조상을 기리는 것과 달리 설 차례의 경우 조상에 대한 세배를 드리는 의미가 크다.

언제부터 한국인은 차례를 지내기 시작했을까.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중국에서 영향을 받아 지냈던 제천행사에서 유래됐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금과 달리 차례상에 많은 제수를 올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율곡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은 "제사는 마땅히 '주자가례'를 따라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지만, 홍동백서·어동육서 등의 표현은 언급하지 않는다. 

율곡은 이어 "지금의 세상 습속을 보면 예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서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집집마다 같지 않으니 매우 가소로운 일"이라며 "이에 제사 예법을 적어 뒤에 덧붙이고, 또 거기에 그림까지 그려놓았으니 반드시 잘 살펴서 그대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격몽요결에 수록된 그림을 보면 과일의 종류는 제시되지 않은 채 맨 앞 열에 과일을 의미하는 ‘果’만 표기돼있으며 고기(肉 또는 炙)나 생선(魚)은 섞여 있다. 세세한 방향까지 표시되어있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의미다. 일반 백성들의 경우 정화수 한 그릇 만을 올린 채 지내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현재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차례상은 역사의 변천에 따라 단계적으로 변해왔다. 최초의 변화는 1894년에 시작된 갑오개혁 당시로,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기존의 양반들이 양민과 차별화하기 위해 제수를 늘리는 등 제사상을 화려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1969년 박정희 정부가 공표한 가정의례준칙 또한 현재와 유사한 상차림을 '공식화'하는 계기가 됐다.

1960년대 산업화로 인한 핵가족화와 도시 이주로 이주 1세대 가구들이 제례에 대한 혼란을 겪으면서, 이 시기 언론사들은 명절 차례상 차리기에 대한 방법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때 특정 지역, 특정 가문의 상차림이 널리 전파돼 일반적인 상차림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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