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의찬미[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윤심덕은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다. 특히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해 드라마, 뮤지컬 등에서 지금까지 회자된다.
윤심덕은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잠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뜻이 있어 총독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는 최초의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아오야마 가쿠인을 거쳐 도쿄음악학교 첫 조선인 유학생이 됐다.
일본에 있을 당시인 1921년 동우회 등의 순회극단에 참여하면서 훗날 함께 바다에 투신하는 극작가 김우진을 만난다. 그는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그럼에도 생계가 나아지질 않자 김우진의 권유로 연극단체 토월회에 들어가 연극배우로 일했다. 하지만 당시 여자 연극배우는 천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게다가 연기력도 부족해 결국 배우로도 실패했다.
윤심덕은 각종 스캔들에도 휘말렸다. 함경도 출신의 재력가와의 혼담이 오갔지만 개인적 이유로 깨졌고, 당시 거부였던 이용문의 애첩이 됐다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다 1926년 7월 윤심덕은 일본 오사카의 닛토레코드회사에서 음반을 의뢰받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해 8월 3일 김우진과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에 올랐고 다음날 새벽 두 사람은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인 8월 1일 녹음한 곡이 '사의 찬미'다. 이바노비치 작곡인 '도나우강의 푸른 물결'에 자신이 직접 노랫말을 썼다. 이는 애초 녹음 예정에 없던 곡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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