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핵 담판’이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린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야기다. 이 같은 소식이 6일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통해 전해지자 전 세계가 주목했다.
전 세계적인 이벤트가 펼쳐지는 가운데 유독 울상인 사람들이 있다. 같은 날 전당대회를 치르기로 했던 자유한국당이다. 홍준표 전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술책”이라며 비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신(新)북풍”이라는 단어까지 꺼내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당 전당대회를 방해하기 위해 일부러 북미회담 날짜를 27일로 했다는 음모론이다. 앞서 지난해 6·13 지방선거 하루 전, 싱가포르에서 1차 북미회담이 열린 데 이어 이번에도 날짜가 겹치면서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다. 과연, 우리 정부가 북미회담 날짜 조율에 개입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 원내대표는 7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지방선거 때 신북풍으로 재미를 봤다고 생각한다”며 “지방선거 직전 이뤄진 제1차 미북 정상회담이 쓰나미로 대한민국 지방선거를 덮쳤고, 그래서 한국당은 참패를 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지방선거 때 신북풍으로 재미를 본 여당이 만약에 내년 총선에서 신북풍을 계획한다면 ‘아서라. 하지 마라’고 하고 싶다”며 “국민도 세 번쯤 되면 그 진위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홍 전 대표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7일 미북회담은 지난 지방 선거 하루 전에 싱가포르에서 미북 회담이 개최되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라며 “27일 한국당 전당대회의 효과를 감살하려는 북측이 문재인 정부를 생각해서 한 술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번에는 국민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에 정치권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한국당 전당대회가 언제 열리든 그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며 “한반도의 명운이 걸린 북미회담을 이렇게 희화화하는 한국당의 인식이 처연하기만 하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의 필요를 위해 모든 것을 가져다 꿰맞추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은 이제 그만 늘어놓으시기를 정중히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민주평화당 역시 “북미회담 날짜를 놓고 한국당의 상상력이 가관”이라고 꼬집었다. 문정선 대변인은 “아무리 정쟁에 눈이 멀었어도 한반도 평화에 재 뿌리는 몽니는 삼가야 한다”며 “북미의 한국당 패싱도 모자라 국민의 한국당 패싱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당이 이처럼 무리한 주장을 펴는 것은 과거 보수 정권 시절, 실제로 ‘북풍’을 이용한 경험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건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총풍 사건’이다. 이는 지난해 영화 ‘공작’으로 만들어져 화제가 됐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에서 상대 후보였던 김대중 후보를 낙마시키기 위해 북한 측에 무력시위를 요청한 것이다.
법원에서도 “피고인들이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청한 행위는 휴전선에서의 긴장 조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범행을 모의하고 실행에 옮긴 것 자체만으로도 국가안보상 심각한 위협이며, 선거제도에 대한 중대 침해”라고 판단했다.
1992년 ‘중부지역당 사건’도 있다. 대선을 앞두고 국가안전기획부는 “남조선노동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며 95명을 간첩 혐의로 적발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후보의 비서가 여기에 관여돼 있다는 사실을 유포해 김영삼 후보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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