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 풍경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인이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모습 말이다. 대통령과의 대화 문턱이 그만큼 낮아진 것이면 좋겠다. 벤처업계의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기존 기업인들은 정부에 부채 의식을 가졌다. 철강과 조선, 자동차와 반도체, 건설 등 모든 전통산업이 정부의 비호 아래 컸다. 그로 인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정경유착이 성장의 지름길로 통했던 시절도 있다.
벤처기업은 상황이 반대다. 아이디어로 창업해 열정으로 컸다. 김대중 정부 시절 벤처 붐이 있었지만 정부가 어떤 지원을 했는 지 뚜렷한 기억이 없다. 이들에게 정부는 울타리가 아니라 규제의 주체다. 족쇄다. 지적대로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해외기업의 국내 영업이 오히려 쉽다. 세금도 덜 낸다. 그래도 정부 눈치를 안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이판사판이란 것이다. 괘씸죄에 걸리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그래서 다같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로 한 것일 수도 있다. 나름 리스크 분산이다.
벤처기업이 쓴소리를 내뱉는 이유가 있는 것 만큼 정부도 규제 개혁을 하지 못하는 연유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0일 이정도 대통령경제과학특별보좌관 등과 오찬을 갖고“아직 공직문화가 굳어져 있다”고 했다. 규제 개혁이 지지부진한 구조적 원인을 짚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공직 문화는) 우리나라 성문법 체계와 관련이 있다. 법적 근거가 없으면 과감한 행정을 펼칠 수 없다”고 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어 대통령의 발언을 쉽게 해석하면 이렇다. 그는 “카풀을 허용하면 담당 과장은 택시 업계의 투고에 시달릴 것이다”고 했다. 이후 감사실에 불려다니면 나중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도 그는 부정 공무원으로 낙인이 찍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규제 개혁은 특혜 시비를 몰고 온다”고도 했다. 규제 개혁은 공무원 입장에선 가리마 타기다. 한쪽으로는 수혜자, 한쪽으로는 피해자가 생긴다. 수혜자로부터 감사 인사는 없지만, 피해자의 투고는 빗발친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했다. 규제 개혁은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선 4차산업혁명을 위한 선결 과제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 입장에선 책임 소재 이슈다. 연금이 걸린 문제다. 애국심과 소명의식을 미끼로 개인의 희생을 끌어낼 수는 없다. 나서는 놈이 정을 맞는다. 바보가 된다.
규제개혁은 그래서 상당히 점진적이고 지난한 과제다. 단계를 빨리 진행할 수는 있지만 건너뛸 수는 없다. 대통령 지적대로 복지부동은 경직된 공직문화의 결과다. 공무원 입장에서 정권은 바뀌지만 정부는 평생 직장이다. 시스템 개선의 문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어렵다. 그런 게 있었으면 우리 정부가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다만 대통령이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데 기대를 걸어볼 수 있겠다. 정확한 진단이 올바른 처방으로 이어지는 건 상당히 강력한 의지의 문제다. 한 가지 전제는 다음 정권이또 그 다음 정권이 처방전을 바꾸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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