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마민족DNA'論 펼치던 금융위원장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할 때부터 김석동 씨는 한국의 경제기적과 ‘한민족의 DNA’에 관련한 팜플렛(소책자)를 들고 다니며 각종 모임의 참석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국은 반세기만에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을 이루었다. 세계역사에서 그 기적의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이 한민족의 DNA이고, 그 근원은 유라시아 대평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던 기마민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만주에서 유럽 대평원까지 동서 8000km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초원 지대는 강수량이 적고 밤에는 영하 40도 낮에는 영상 40도의 극한지대다. 이곳에서 가공할 생존력과 전투력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민족은 영리하고 강인한 독특한 인간 유형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세계역사를 바꾸고 중국을 지배했던 유라시아 대평원의 스키타이, 흉노, 몽골, 여진은 모두 고조선 및 발해와 관련이 있는 민족이며 이 정신과 투지가 한국인에게 내려오고 있다는 줄거리다.
# "한국 경제기적 원동력은 생존본능-승부사 기질-집단의지"
그는 35년 경제 관료를 하면서 경제사 공부에 관심을 쏟았다. 1960년 이후 세계적으로 GDP(국내총생산)가 7.5배 증가했는데 한국은 40배 가까이 증가했다. 세계 경제사에 유례가 없는 기적을 이룬 원동력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를 천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GDP 구성 요소인 인력에 관심을 두고 연구했다. 우리나라만큼 평균 IQ가 높은 나라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 밖에 없다. 한국인은 독특한 DNA를 가지고 있다. 끈질긴 생존본능, 승부사 기질이다.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역경이나 고난을 무서워하지 않고 이겨나간다. 남편도 ‘내 남편’이 아니라 ‘우리 남편’이라고 한다. 집단의지가 강한 문화다. 국가 위기마다 출현했던 의병도 비록 군인이 아니지만 힘을 합쳐 나라를 지키겠다는 불굴의 투쟁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경제에서는 수출 입국 전략으로 세계로 향해 문을 열고 기적을 일으켰다.”
# 그 우수한 기마민족 몽골은 지금 왜 저 모양?
-기마민족의 DNA가 우수하다는 가설을 인정한다면 최단시간에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지배하던 몽골의 후예들이 오늘날에 저 모양이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17세기에서 18세기 총포 화약류가 발명되면서 기마군단 자체가 약화됐다. 이전까지는 기마군단의 파워를 당할 수 없었다. 몽골 기병 9만5000명이 세계의 80%를 지배한 적도 있다. 그러나 18세기 총포, 화약류가 발명되면서 포를 쏘게 되면 말이 놀라 기동력을 잃어버리고 결국 기마 군단이 멸망하게 됐다.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리도 성공을 이뤘지만 여건 변화에 개혁적 혁신적으로 적응하지 않으면 언제 뒤질지 모른다.”
# 노갈레스 봐라, 민족DNA로 설명되나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국가는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라는 공저(共著)에서 미국 애리조나주와 멕시코에 걸쳐 있는 도시 노갈레스를 예로 들며 국가의 시스템이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주 산타 크루즈 카운티에 있는 노갈레스는 주민의 연평균 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다. 그러나 국경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시피한 멕시코의 노갈레스는 주민의 소득이 북쪽 노갈레스의 3분의 1에 못 미친다. 멕시코에서는 부유한 지역인데도 십대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범죄율이 높다. 관료들이 부패해 인허가를 받으려면 뇌물을 주어야 한다. 멕시코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한 정치리더십의 교체가 없었고 잦은 정변으로 정치와 경제가 불안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는 밤에 찍은 한반도의 위성사진이 실려있는데, 북한은 암흑천지치고 남쪽은 불빛이 환하다.
-민족의 DNA라는 용어는 인종주의적인 논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노갈레스나 남북한을 보더라도 국가발전의 요인에 민족의 DNA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게 많다.
“DNA를 묶어 놓느냐 풀어놓느냐의 차이다. 남쪽은 맘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풀어놓은 사회이고, 북한은 그런 찬스가 없었다. 한국은 DNA를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 그 우수한 DNA로 삼전도 굴욕 당한 건 어떻게 봐야하나
-임진왜란 떄 援軍(원군)을 끌고 온 명나라 장수가 훈련이 안 돼 있고 용기도 없는 조선 군대를 보면서 “당나라를 패배시킨 고구려 후예들이 왜 이 모양이냐”고 한탄했다는 역사의 기록이 전해온다. 청나라 황제에게 인조가 엎드려 술잔을 올리는 삼전도의 굴욕도 있었다. 조선시대에 우리 민족이 제대로 우수한 DNA를 발현하지 못하고 종국에는 국권을 잃는 사태로 치달은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는 고려 때까지 기마민족의 기상을 갖고 있었다. 고려가 망하기 직전에 북벌에 나서 요동정벌군이 5만5000명이었고 기병이 2만5000명에 달했다. 북방과 대적해서도 숭무(崇武) 정신이 충만한 국가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 말기 최무선 선생이 세계최초로 배에 함포를 장착한 최강의 해군을 가지고 있었다. 요동정벌을 시도할 정도로 대규모 병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조선조에 완전히 바뀌었다. 조선은 중국에 의존해 왕조를 유지한 사대(事大) 국가다. 성리학 등 崇文(숭문)에 치우치면서 국가가 대외 지향적인 스피릿(정신)을 잃었다.”
# 해외 거주 인구비율, 한국이 세계최고
-책에 보면 국제 이민 비율 굉장히 높다고 하는데, 노마드(유목민) 피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1년 이상 거주목적으로 해외에 나가는 인구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세계 유라시아 대초원은 물론이고 사람들 살기 어려운 곳에도 많이 다녀봤는데 한국인의 발자취가 없는 곳이 없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살아남는다. 동유럽 어디를 가도 대우 등 한국의 흔적이 있다. 모스크바의 한국 간판에서 보듯이 힘찬 에너지를 가지고 밖에 나가서 세계 수출 6위 국가를 이루었다. IT 인터넷 세계에 침투해 들어가는 모습도 말 타고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개척 정신이 있다.”
# 교육비 안 아끼는 나라, 승부사 기질 때문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크게 히트를 했다. 우리나라는 부작용이 우려될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데, 경제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GDP는 인력, 기술, 자본으로 구성된다. 인적 요소를 놓고 보면 한국인은 머리가 좋다. GDP 대비 공교육비가 전세계 1위다. 공교육비가 80조원에 달하고 사교육비가 30조다. 해외 유학생은 13만 2000명으로 중국, 인도 다음으로 많다. 인구비례로 하면 세계 최고다. 미국 유수한 대학에 가면 한국학생이 상위권에 즐비하게 있다. 한국인은 교육이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대를 이어가며 교육비를 때려 붓는다. 승부사의 기질까지 더해져 대를 이어서 새로운 세계에 투자하는 도전을 한다.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긍정적 요소가 훨씬 많다.”
(교육열이 꼭 기마민족의 DNA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몽골족은 고유의 문자가 없어 역사의 기술(記述)도 타민족에 의존했다. 징기스칸은 문맹이었다. 몽골족의 교육은 무예에 치중했다.)
-나는 못 배웠지만 자녀는 잘 가르쳐 출세를 시키자는 것이 한국인의 교육열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도 늦게 하거나 안하고 애도 안 낳으려 한다. 정말 국가장래가 걱정이 된다.
# 임대주택으로 집걱정 없애줘야, 전시대 에너지 발휘
“경제기적을 만든 사람들의 2세들인데 왜 선배 세대의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할까.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의식(衣食)은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주거의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10년 동안 안 쓰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 주택의 문제는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저출산, 소비문제, 가계부채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국가가 주택을 공급하는 임대주택 정책이다. 결혼해서 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언제든지 임대해서 살 수 있게 해줘야 된다."
"예를 들어 임야는 평당 500원, 택지를 500만원에 샀다면 거기에 집을 지어 개발이익을 그 동안 시행사, 건설사가 가져갔다. 연기금, 보험자금, 생보사 자금이 갈 곳 없이 헤매고 있는데 이를 활용해 공공임대주택을 공금리 정도 내고 살 수 있도록 대규모로 공급해야 한다. 새로운 세대가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어야 한다. 토지에 관한 이익을 사적으로 취하게 해서는 안 된다. 토지공개념을 바탕으로 공장을 50년 임대하다 망하면 다음 회사가 또 처음 땅값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국가부도의 날'에 재경원 주무과장이었는데, 영화 보시니 어때요?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으로 주무과장이었다. 국제수지, 외환보유고, 외평기금, 외환수급 모든 대외관계를 담당하는 실무자였다. 최근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가 손님을 끌었다. 영화에는 본래 허구(픽션)가 섞여 들여가게 마련이지만 실제와는 얼마나 다를까.
“아주 많이 다르다. 국회 청문회 속기록을 보면 영화와 정반대라는 것을 입증하는 문답이 나온다. 1997년 1월 21일 부임했는데 내가 재정경제원에서 외환정책을 가장 오래한 사람이었다. 당시 윤증현 실장이 위기 조짐이 보이자 나를 데려다 놨다. 첫날 업무보고를 받고 나라가 완전히 기울었다는 것을 알았다.”
# "영화와는 반대였다. 플로팅 거부하고 IMF 고집한 건 한은이었다"
그가 외화자금과장을 맡았을 때 한국은행 외화자산이 통틀어 650억 달러 정도였다. 그 중 330억 달러가 해외에 예치돼 있었다. 단기외채 비중이 58%였다. 그가 부임한지 이틀 만에 한보가 부도가 나고 대외차입이 단기이고 장기이고 모두 끊겼다. 강경식 부총리는 그런데도 “경제 펀더멘탈은 괜찮다”는 말을 거듭했다. 1997년 들어 한보를 시작으로 30대 계열 기업중 8개가 도산했다. 기업의 3분의 1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펀더멘탈이 건전하다고 말한 것은 돌이켜 보면 ‘헛소리’였다.
“나는 처음에 환율을 원샷으로 절하해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도록 하는 플로팅(floating)을 하자고 했는데 한은이 반대했다. 영화와 반대다. 나는 끝까지 IMF 안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주장했다. 은행 외에는 자금 차입이 없어 은행만 튼튼하면 돈 빼갈 이유가 없었다. 내 직책은 기업의 경리부장 같은 자리였다. 금융 개혁을 하고 해외에 우리가 안전하다는 시그널을 주고, 은행에서 돈을 빼가지 않게 해달라 부탁했지만, 개혁도 안되고 IMF로 가게 됐다. IMF에 끝까지 안가고 버텨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중남미 케이스 때문이었다. IMF에 가면 불행이 시작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초고금리 재정긴축, 무수한 회사 도산, 실업자가 도출하는 케이스가 즐비했다. 한은 입장은 외환 보유고 소진이 두려워 빨리 IMF 가서 보유고를 지키자는 생각이었다.”
“논란 있을 수 있는 대목이지만 실제 경험해보니 전면에서는 IMF가 협상하지만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레스큐 패키지(Rescue Package)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작동하게 하는지는 미국의 뜻이 결정적임을 실감했다.”
# "중국 작년성장률 2%대, 틀림없다고 봐"
-중국이 지난해 최저 성장률을 기록하고 기업부채 확산하는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의 불이 붙었는데 어떻게 결말이 날 걸로 보나?
“세계 경제 여건 자체가 굉장히 나쁜데 그 중 하나가 미중무역분쟁이다. 지금 이제 세계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부분에 폭약이 쌓여있고 뇌관이 형성되고 있다. 중국의 세계 패권주의로 ‘제조업 2025’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슬로건 아래서 움직여 왔다. 미국이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려는 정책방향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대부터 형성됐다. 지금은 구체적으로 집행되는 과정이다. 뿌리가 깊고 해결이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일시 봉합된다 하더라도 다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환경이 될 수 있다."
"중국 자체의 리스크도 문제다. 부채문제를 어떻게 헤어날 것이냐가 문제다. GDP 대비 2008년 중국 부채 규모가 145%였는데 지금은 261%로 높아졌다. 신흥국에서도 드문 케이스다. 부동산 버블에 금융회사는 물론 지방정부 부실채권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중국의 작년 성장률이 6.5%라고 하는데 미국 전문가들은 절반 정도로 본다. 워싱턴에서는 중국이 지난해 3%를 못 넘었다고 공공연히 추정한다. 2%대라는 얘긴데, 개인적으로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 중국 우쭐하는 건 34년전 일본과 비슷···그뒤 일본이 어떻게 됐나 보라"
-중국은 이전 까지는 등소평의 가르침인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국정 전략을 유지했다. 그런데 시진핑 시대에 오면서 미국과도 맞장을 뜨고, 사드 사태나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訪中)시 홀대 등 에서도 보듯이 주변국을 얕보는 우쭐함이 두드러졌다. 이것이 오늘의 사태를 부른 것 아닌가?
“전적으로 공감한다. 1985년 기고만장(氣高萬丈)했던 일본과 같다. 당시에는 중국이 아니라 일본의 경제력이 세계 2위였다.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산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면서, 소니가 콜롬비아를 사들이고…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본의 파워가 굉장했지만 1985년 9월 20일 플라자 회담에서 ‘상호 협력한다’는 짧은 코뮤니케가 나왔다. 이후 환율 250엔이 2년 후 125엔, 3년 후에는 81엔이 되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다. 시진핑이 명나라 청나라 황제처럼 주변국에 군림하는 태도로 사드 사태를 일으키고 영해 영공 싸움을 걸었다.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몽골 일대에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미국과 패권 다툼 조짐이 보였다. ‘제조업2025’, ‘일대일로’ 정책이 상징적이다. 시진핑 체제에서는 미국과 순조로운 합의 도출이 어렵다고 본다."
"IMF 금융위기때 미국 파워를 생생하게 지켜봤다. 1980년대 사람들이 보통 미국이 1등, 일본이 2등이라고 했다. 지금 미국이 1등으로 GDP 18조5000억 달러, 중국이 11억2000억 달러로 마치 1등에 버금가는 2등같이 보이지만 세계에서 미국을 빼고 나면 나머지는 디 어더즈(The others)다. 중국이 견디기 쉽지 않을 거다.”
# 내부 갈등과 외부 리스크 모두 크다, 숨 고르기 필요
-한국 경제와 관련해 살아오면서 보면 “잘 풀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듯하다. 항상 어렵다. 요새는 뭐가 문제인가?
“그동안 우리는 100m 달리기하듯 1km 달리기를 했다. 숨이 가빠 호흡 조절이 필요한 단계다. 너무 빨리 뛰어오는 과정에서 누적된 문제들이 다 부상했다. 가계부채가 전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다. 산업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숨이 가쁘고 허덕거린다.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 고용절벽이 심각하다. 양극화가 갈수록 벌어지는 형국이다. 갈등구조가 심해 집단의지가 발현 안 되고, 국가 에너지를 분열시키는 요소가 많다."
"대외 경제가 나쁜 것이 더 악성이다. 2008년 위기는 근본 원인이 부채 문제인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유동성을 많이 풀고 버블 속에서 잘 살았다. 2008년 암초를 깨는데 시간과 돈을 들였어야 하는데 암초를 안 깨고 물을 부었다. 최초로 0% 금리가 시작됐다. 금리를 낮추는 것은 부채 늘리는 것인데 부채 문제를 부채로 막았다. 세계가 언스테이블(unstable)하다. 전 세계가 빚더미다. 통화량이 신흥국으로 흘러가 신흥국도 언스테이블하다. 화약이 쌓여 있는데 중국 리스크, 미중 무역분쟁 등은 뇌관이다. 미국도 실물경제 확장 국면이 끝나가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난리고 프랑스 독일도 정책 대응이 힘들다. 세계각국이 난민, 테러 문제, 신흥국 금융불안, 아르헨티나 사태 등 도처에서 뇌관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 대륙세력-해양세력 사이, 두만강 하구 물류중심으로 혁명 일으켜야
-난국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돈을 붓는 것은 끝난 방식이다. 지금은 두 가지다. 첫째는 18세기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새로운 생산결합 방식, 물류혁명이 일어야 한다. 세계경제에 혁명적인 움직임 태동돼야 한다. 특정 나라만으로는 안되고 국제 협력을 통해야 한다. 그게 세계가 살 길이다. 새로운 생산 방식, 물류 혁명을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한반도다. 세계 500대 기업이 미국 중국 한국에 50%가 있다. 한반도는 TKR(한만도 종단철도)과 TSR(시베리아 횡단철도), TCR(중국횡단철도)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기점이다. 한반도는 대륙세력 러시아와 중국 미국 일본 등 해양세력의 접점에 물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북극항로는 일년에 4개월 이상 열리는데 북극항로로 부산에서 노르웨이까지 가면 거리를 60% 줄일 수 있다. 물류 혁명을 위한 어마어마한 항로가 생겨 대륙국과 해양국의 연결이 한반도서 일어난다. 철도는 합의만 하면 연결 끝난다. 철도기술원은 대륙을 넘나드는 기차레일 개발을 끝냈다. 바퀴가 철로에 맞춰서 움직인다. 옛날에는 환적했지만 폭을 맞춰서 바퀴가 바뀐다. 물류 혁명이다."
"김석철 교수에 따르면 지정학적 위치로 중국은 태평양 진출이 꿈이고 러시아는 극동개발에 명운을 걸었다. 일본은 대륙으로 진출하려 한다. 그럼 최고의 자리는 두만강 하구다. 러시아와 중국, 북한은 땅을 내 다국적 도시로 만들면 생산 혁명, 물류 혁명 기지가 생기게 된다. 미국과 일본은 돈을 내고 우리나라는 그걸 짓는다. 복합도시를 많이 건설해본 한국은 도시 설계 시공 1위다. 국제적인 협력 하에 생산 물류 혁명 케이스를 만들 수 있다. 국제 협력으로 두만강 다국적 도시, 유라시아 대철도 등 혁명적인 생산방식을 창출해야 한다.”
김석철 교수는 그의 친형이다. 서초동 예술의 전당을 설계했다.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을 하는 꿈을 가꾸면서 새만금 도시, 휴전선의 친환경 도시, 두만강 다국적도시 등에 열정을 쏟았다.
# 북한도 어떻게든 경제 돌파구 찾으려 할 것
“한국 사람들이 DNA는 성장 DNA다. 끈질긴 생존본능, 집단의지, 개척자 근성 등 위기 극복 요소가 피 속에 녹아있다. 분명히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강한 집단의지가 발현되려면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풀어놔야 한다. 기업들이 맘껏 일할 수 있게. 한민족 DNA 발현시키는 것이 위기 극복 방법이다. 족쇄 풀고 세계 나가서 맘대로 하도록 해야 한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시베리아 횡단철도나 두만강 국제도시를 개발하려면 북미대화가 잘 성사돼야 할 텐데….
“남북문제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되는데 가능성이 높다. 분단이 벌써 몇 년인가.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도 협력할 가능성 높다. 남북, 북미 대화가 성과를 냈으면 한다.”
-북의 비핵화를 낙관하기는 어렵지만 김정은에게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장마당 경제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구조다. 북한 사회가 굉장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이미 들어갔다는 느낌이다. 북한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기대한다.”
# 대출 끊겨, 창업한 기업 문닫은 경험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에 들어갔다. 그 시절에는 삼성그룹 계열사 중에서 삼성물산이 최고였고 삼성전자는 사다리의 맨 아래 칸이었다. 무역 붐이 일면서 그는 1년만에 삼성물산을 나와 무역회사를 창업했다. 형(김석철)이 자본금을 대고 회사의 명칭을 주재(主帝) 실업이라고 했다. 이름처럼 큰 꿈을 갖고 시작했다. 종합무역상사를 지향하고 주재중공업, 주재석유화학을 연이어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한데 제2차 오일쇼크가 와 대출이 끊겨 무역금융을 쓰지 못했다. 담보 없는 금융을 외친 것도 그 때문이다.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공직으로 옮겨 잠깐만 하고 다시 기업을 해보려 했는데 공무원으로 눌러 앉게 됐다.
-기업에 근무하고 창업 해본 게 정책 구상에 도움이 됐나?
“주재실업은 다수의 하청공장을 거느리고 있었다. 은행과의 관계, 노동 현장 등 모든 문제를 경험했다. 기업규제 개혁 종합대책 할 때도 그 경험을 살렸다. 금융정책 할 때도 연대보증을 두 차례 걸쳐 없앴다. 과거에는 기업을 하다 실패하면 연대보증 때문에 회사 망하고 자기집 망하고, 친가 망했다. 현실경험에서 통찰력을 얻은 부분이 정책에 반영됐다.”
# 한국 부강해졌는데, '헬조선'이란 청년들 자조(自嘲) 충격적
김 전 위원장은 법무법인 지평의 인문사회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그의 사무실에는 백발동안(白髮童顔)이라고 쓰여진 작은 조상(彫像)이 놓여 있었다. 그를 정확히 묘사한 사자성어(四字成語)다. 젊어서 머리가 하얀 사람은 숱이 많다. 그는 염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굴이 동안이라 노년 티가 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직업을 못 구해 난리인데 조언을 한다면?
“사실 이번에 내가 쓴 책도 젊은이 많이 보길 기대한다. ‘헬 조선’이라는 말은 내게 쇼킹하게 다가왔다. 한민족의 역사상 고조선, 고구려가 정말 대단한 나라였다. 대한민국은 가장 잘사는 시기로 부강한 나라인데 청년들 사이에서 미래를 암담하게 내다보는 ‘헬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원천적이고 근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단기 지원이 아니고 모든 규제와 족쇄를 풀어주고 젊은이들이 세계에 나가 활약할 수 있는 베이스를 만들어 줘야 한다. 청소년들이 대기업에 들어가 안전하기 살려하기 보다 새로운 일, 개척자적인 일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아낌없이 도와주고 터전도 만들어줘야 한다. 젊은이들은 근면하게 도전적으로 개척자 정신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리 = 이한선차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