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그 사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2017년 어린이집에서 장난감을 삼켜 기도가 막힌 어린이가 응급실을 전전하다 결국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얼마 뒤 우연히 만난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기자의 기억 속에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와 관련된 이슈라면, 언제든 누구에게라도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려 했다. 취재차 잠시 만나고 몇 차례 통화한 것이 전부지만, 응급의료에 대한 소명의식과 책임감이 큰 윤 센터장은 기자의 뇌리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던 참의료인이었다.
윤 센터장은 설 연휴인 지난 4일 오후 6시경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을 거뒀다. 1차 부검 소견서에 따르면 사인은 관상동맥경화로 인한 심장사.
그는 2002년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가 문을 열자 응급의료기획팀장으로 합류해 응급의료 관련 업무에 힘을 쏟았다.
특히 응급의료 전용 헬기 도입과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큰 역할을 했다. 400여개 응급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응급진료 정보를 수집하는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을 완성했다.
또 응급환자 이송정보 콘텐츠를 개선·보완해 환자 이송의 적절성‧신속성을 제고하는 응급의료이송정보망 사업 등도 추진했다.
이 같은 노력과 성과 뒤엔 그의 남모를 희생이 뒤따랐다. 바쁜 업무 탓에 하루이틀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번 설 연휴에도 귀성길을 준비하던 유족은 연락이 닿지 않는 윤 센터장을 이틀이나 기다렸다.
국내 응급체계 중앙사령탑인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었던 그는 특히 명절 같은 연휴기간에 더 바빴다. 실제로 의료계에선 응급의료에 있어 연휴는 곧 재난과 같다는 말이 있다.
윤 센터장의 사망 소식이 더 안타까운 것은 그가 진심으로 응급의료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윤 센터장은 가끔 SNS에 자신의 생각을 적곤 했는데, 그 중심에는 항상 응급의료와 환자가 있었다.
‘무엇보다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환자의 편익이 있어야 한다’, ‘결국 환자에게 좋은 게 가장 좋은 것이니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등 윤 센터장의 소신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오늘은 몸이 세 개, 머리가 두 개였어야 했다. 내일은 몇 개가 필요할까?’라고 쓴 것처럼 평소 윤 센터장의 고된 업무 현실도 엿볼 수 있어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생전 윤 센터장을 따르고 의지했던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10일 그의 영결식에서 “윤한덕 선생님은 병든 응급의료를 떠받치던 아틀라스(Atlas)였다”고 추모했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운행을 시작할 닥터헬기에 그의 이름과 콜 사인(Call sign)인 'Atlas'를 크게 박아 넣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매일 커피를 물처럼 마시면서 응급의료센터 안에서 24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고(故) 윤한덕 센터장. 이제라도 닥터헬기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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