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發 비둘기 바람에 달러 강세 행진...2년래 최장기 랠리

달러, 美 FOMC 이후 8거래일 연속 상승...올해 최고치

경기둔화 우려에 세계 中銀 긴축 중단..달러 매력 부각

[사진=아이클릭아트]

“공포에 사로잡힌 비둘기들이 달러 랠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1일(현지시간) 달러 값이 8거래일 연속 상승하면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하자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경기둔화를 우려해 금리인상 잠정 중단 가능성을 시사하자 다른 몇몇 주요 중앙은행들도 잇따라 긴축 계획을 취소, '비둘기'로 선회하면서 상대적으로 달러의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둘기는 온건파의 상징이다. 통화정책에서는 경제성장을 우선시해 통화완화를 선호하는 이들이나 그런 성향을 가리킨다. 대척점에 있는 강경파, 이른바 '매파'는 인플레이션을 경계해 금리인상 등 통화긴축을 선호한다. 
 

달러인덱스 1개월 추이[사진=인베스팅닷컴]

세계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97.05까지 올랐다. 8거래일 연속 오른 것으로 2017년 2월 이후 가장 긴 상승행진이다. 8거래일간 상승률은 1.8%에 달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달러는 지난달 29~30일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쉼 없이 상승했다. 당시 연준은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낸 성명에서 '점진적 추가 금리인상'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면서 긴축 기조 중단을 신호했다. 제롬 파월 의장도 미·중 무역전쟁, 중국과 유럽의 성장 둔화를 거론하면서 금리 인상의 근거가 약해졌다고 강조했다. 

금리인상 전망이 약해지면 해당 통화도 약세를 보이는 게 보통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연준이 방향을 틀자 다른 중앙은행들도 통화긴축 중단 또는 통화완화 행보로 뒤따르면서 달러의 매력이 오히려 높아졌기 때문이다. 영란은행과 호주 중앙은행은 경기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 악재에 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및 태국 중앙은행은 금리동결과 함께 완화적 목소리를 확실히 했고 인도 중앙은행은 깜짝 금리인하를 단행하기도 했다.  

올해 달러 약세를 예상하던 기관투자가들도 전망을 뒤집기 시작했다. BNP파리바자산운용은 글로벌 성장 둔화와 세계 중앙은행들의 긴축 제동에 올해 상반기에만 달러가 5% 가량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는 올해 달러 하락을 예상했다.

몸트칠 포자를리브 BNP파리바 외환팀 수석은 “달러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연준을 시작으로 세계 다른 모든 중앙은행들이 통화 완화적으로 가고 있어서다”라고 설명했다.

당초 모건스탠리와 노무라 등도 올해 달러 약세를 예상했다. 투자자들이 올해 미국의 재정악화나 성장률 둔화 등의 악재를 피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세계 경제가 동반 둔화되다보니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워지면서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달러의 몸값이 치솟게 됐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의 성장 전망은 미국보다 더 나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1.3%로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3개월 만에 0.6%포인트나 낮춘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연내 금리인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결과 11일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작년 1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불확실성 속에서 영국의 작년 한 해 성장률은 1.4%를 기록했다. 2012년 이후 6년만에 최저치다. 이 여파로 파운드화 가치는 11일에만 달러 대비 0.7%나 미끄러졌다.

세계 2위 규모인 중국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급격한 둔화에 직면해있다. 중국 관영언론에서는 이날 올해 중국의 1분기 성장률이 6%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이후 최저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경제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 무역 상대국들의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과거를 보면 글로벌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을 때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마켓워치는 지적했다. 또한 미국의 1월 민간부문 고용지표에서 확인됐듯 아직까지 미국 경제는 여타 경제국에 비해 선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달러 강세가 쭉 이어질지를 두고 전문가들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FXTM의 루크먼 오투누가 애널리스트는 마켓워치에 “무역전쟁 역풍, 세계 경제 부진, 국내 재정부양책 약화, 정치적 불확실성이 미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음을 감안할 때 달러는 하방 충격에 취약하다”면서 “미국 경제가 확실히 둔화되고 있다는 신호가 나오면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가파른 하락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울러 많은 전문가들이 2020년 미국의 경기침체 돌입을 예상하는 가운데, 연준이 금리인상 중단에 머물지 않고 금리인하로 돌아설 수 있음을 신호할 때 달러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마켓워치는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