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3세도 뛰어든 홍콩, 후계자 못찾는 中…재벌 경영승계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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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9-02-1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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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세 경영 활발한 홍콩...창장그룹 장손녀, 23세에 이사 선임

  • 中재벌은 승계 문제로 골머리...마윈은 전문경영인에 넘겨

  • "민영기업 경영 승계 문제, 국가 경제 아킬레스건 될 것"

캐나다에서 체포돼 억류 중인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왼쪽부터)과 리자청 창장그룹 회장이 장손녀 리쓰더와 함께 촬영한 사진,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의 외아들 왕쓰총. [사진=바이두 캡처]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지난해 12월 초 캐나다에서 체포·억류된 지 세 달 가까이 흘렀다.

멍 부회장은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위반, 미국 기업의 기술·정보 탈취 혐의 등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중국 정부의 통제 및 지원 속에서 성장해 온 화웨이가 표적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가자본주의 혹은 중국식 시장경제로 불리는 체제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온전히 보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화웨이 창업주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의 딸인 멍 부회장은 자타공인 후계자 1순위였다. 75세 고령의 런 회장은 딸에게 곳간지기인 CFO를 맡길 정도로 신뢰한다.

멍 부회장이 체포되면서 화웨이의 경영 승계 구도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국은 캐나다 측에 멍 부회장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고 캐나다는 고민 중이다.

캐나다가 신병 인도를 결정할 경우 미국에서 각종 혐의를 둘러싼 지루한 법정 공방이 시작될 예정이다. 유죄 판결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풀려나더라도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가 정상적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잘나가던 중국 최대 민영기업이 경영 안정성 악화라는 위기에 봉착했다.

화웨이처럼 극적이진 않더라도 많은 중국 기업들이 경영 승계 문제로 골치를 썩이는 중이다.

후계자의 자질 부족이나 무관심과 같은 내부 변수부터 정경유착과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기업 약진 민영기업 후퇴) 논란,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 등 외부 변수까지 다양하게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재계를 대표하는 두 인물이 잇따라 은퇴를 선언했다. 리자청(李嘉誠·리카싱) 홍콩 창장(長江)그룹 회장과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이다.

창장그룹은 3세 경영까지 시작된 데 반해 50대 중반의 마윈은 아들 대신 전문경영인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기로 했다. 각자의 고민이 반영된 행보다.

이 같은 사례를 통해 중국 재벌의 경영권 승계 현주소를 살펴본다.

◆능력 있으면 사위라도, 능력 없으면 생활비만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 영국 식민지배 시기부터 기업 문화가 형성돼 온 홍콩은 2세를 거쳐 3세 경영까지 활발하게 이뤄지는 편이다.

지난해 말 리자청의 장손녀인 23세의 리쓰더(李思德)가 창장그룹 자회사인 부동산 개발업체 자오펑(兆豊)부동산의 이사로 선임되자 중화권 재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홍콩 최대 재벌인 창장그룹에서 3세 경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다. 1972년 설립된 자오펑부동산은 1988년 리자청이 인수한 뒤 그룹의 핵심 자회사로 성장했다.

1996년생으로 킹스칼리지런던대 법학과를 졸업한 리쓰더는 리자청의 장남인 리쩌쥐(李澤鋸·빅터 리) 창장그룹 신임 회장의 맏딸이다. 리쓰더는 자오펑부동산 외에도 홍콩의 대형 불교 사찰인 자산사(慈山寺)와 캐나다 소재 우라늄 광산 등의 이사로 등재됐다.

부친인 리쩌쥐 역시 21세 때 창장그룹에 입사한 뒤 후계자 수업을 거쳐 지난해 5월 리자청이 공식 은퇴를 선언하면서 회장직을 승계했다.

리쓰더는 창장그룹 3세로 분류되는 7명 중 유일한 20대다. 리쩌쥐가 어린 시절 납치됐다가 10억 홍콩달러를 지불하고서야 풀려난 일 때문에 창장그룹은 3세들의 대외 노출을 극도로 경계해 왔다.

리쓰더도 2017년 리자청과 함께 찍은 사진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리쓰더를 시작으로 창장그룹 3세 특히 남성들의 경영 참여가 확대될 전망이다. 대표적인 가족 경영의 사례다.

홍콩 4대 선박왕으로 불렸던 해운 재벌 바오위강(包玉剛)은 슬하에 딸만 넷이었다. 이 중 차녀가 젊은 기업가 우광정(吳光正·피터 우)과 결혼했다. 바오위강은 가업을 사위에게 넘겼다.

우광정은 장인에게 물려받은 자산 규모 1000억 홍콩달러(약 14조3000억원) 이상의 부동산 투자회사 주룽창(九龍倉)의 경영권을 2013년 아들인 우종촨(吳宗權)에게 승계했다. 주룽창은 홍콩 타임스퀘어 광장과 할리우드 광장 등을 보유한 유명 기업이다.

현재 39세의 우종촨은 홍콩 5대 부동산 재벌의 오너 가운데 가장 젊다.

또 다른 선박왕 쉬아이저우(許愛周)가 설립한 중젠(中建)그룹은 3남인 쉬스쉰(許世勳)이 차지했다. 큰형과 둘째형이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그룹을 독식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향년 97세로 사망한 쉬스쉰은 420억 홍콩달러(약 6조원)의 유산을 50대 아들 쉬진헝(許晉享)에게 물려주지 않고 신탁기금에 맡겼다.

홍콩 유명 여배우 리자신(李嘉欣)의 남편인 쉬진헝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유흥을 즐기며 세월을 보냈다.

부친의 사망으로 그가 손에 쥐게 된 것은 그룹 경영권 대신 월 200만 홍콩달러(약 2억8600만원)의 생활비다. 물론 홍콩 1인당 월평균 수입의 10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기는 하다.

◆가업 승계 싫다는 2세, 속 타는 창업주

홍콩과 달리 1978년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후 민영기업이 출현한 중국은 여전히 창업주들이 경영 일선에서 활약 중이다. 3세는커녕 2세 경영 사례도 많지 않다.

중국에서는 재벌 2세를 '푸얼다이(富二代)'로 부르는데,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다(不學無術)는 인식이 강하다. 지나치게 부를 과시해 사회적 지탄을 받거나 여배우와 염문을 뿌리고 경영 대신 도박에 몰두한 이들이 많았던 탓이다.

다만 최근 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중국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의 최고경영자(CEO)인 류칭(柳青)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인 레노버 창업주 류촨즈(柳傳志)의 딸이다.

하버드대 졸업 이후 골드만삭스 등 월스트리트에서 활약한 류칭은 가업 승계를 거부하고 디디추싱에 합류해 업계 대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7년까지 아시아 최대 부호였던 왕젠린(王健林) 완다(萬達)그룹 회장의 외아들 왕쓰총(王思聰)은 사모펀드 프로메테우스캐피털을 운영 중인데,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존 푸얼다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영향을 미칠 사례는 늘고 있지만, 가업 승계보다 창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창업주들의 고민은 여전하다.

정부의 강압적 통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도 끝나면서 경영 환경이 악화한 게 경영 승계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으로 제기된다.

중화학이나 노동집약적 산업이 쇠락하고 IT 등 첨단 산업이 발전하면서 해외 유학으로 전문성을 갖춘 2세들의 창업 도전이 활발해진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체제 들어 국진민퇴 논란 등이 확산하면서 민영기업 창업주가 회사를 물려주기도, 2세들이 적극 나서 이어받기도 애매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조기 은퇴를 선언한 마윈처럼 아들이 아닌 전문경영인를 후계자로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중국 재계의 한 소식통은 "화웨이의 경영권 위기는 수십만 직원은 물론 해당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민영기업의 경영 승계 문제가 국가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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