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종영한 JTBC 드라마 'SKY 캐슬'(극본 유현미·연출 조현탁)은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들여다보는 풍자 드라마다. 오나라는 한서진을 롤모델 삼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카피하고 스캔해 아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려는 전업주부 진진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오나라는 '품위있는 그녀' 안재희를 지나 '나의 아저씨' 정희, 'SKY 캐슬' 진진희에 이르기까지 비호감을 '호감'으로 비틀거나 표면과 심연의 격차가 큰 인물들을 표현해왔다. 코미디부터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인물들까지 그려낼 줄 아는 오나라의 '연기'는 언제나 그렇듯 시청자들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만난 배우 오나라의 일문일답이다
진진희와는 잘 이별하고 있나?
첫 방송 시청률이 1%대에 그쳤다. 배우들이 걱정이 컸다던데
- 다른 배우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다. '품위있는 그녀'도 2%로 시작해서 10%대로 끝났다. 오히려 첫 방송을 보고 '와, 찢었는데?'라고 생각했다. 하하하. 2회부터는 시청률이 무조건 잘 나올 거로 생각했다. 이후에는 시청률이 쭉쭉 올라가는데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품위있는 그녀' 최고 시청률(12.1%)을 넘어섰을 땐 심장이 너무 뛰었다. 15% 이후부터는 '아, 이제 수치는 의미 없다. 유종의 미를 잘 거두자'고 했지.
시청률 20%대는 배우들에게도 큰 의미였을 거 같은데
- '미스터 션샤인' '도깨비'를 앞섰다고 했을 때 '이래도 되나?' 싶었다. 앞으로 어쩌려고 이러는 거지? 하하하. 제가 워낙 사랑하는 작품이라 '품위있는 그녀' 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그쪽 팀에서도 'SKY 캐슬'을 열렬히 응원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품위있는 그녀'부터 '나의 아저씨' 'SKY 캐슬'까지 흥행률이 높았다
- 그런 좋은 작품이 제게 찾아와줬다.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좋은 성적으로 잘 나와서 'SKY 캐슬'로 정점을 찍고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다. 즐기면서 잘 찍었는데 오히려 차기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이어가면 통할까? 차라리 작품을 찍고 있을 때가 나은 거 같다. 쉬고 있을 땐 오히려 걱정이 더 많은 거 같다.
진진희 캐릭터 소개를 보니 재밌는 요소가 많았다. 방송연예과를 졸업하고 단역배우 출신이라거나 하는 점들. 캐릭터 빌드업은 어떻게 했나?
-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캐릭터 설정 때문이었다. '나의 아저씨' 정희 역을 하고 우울증까지는 아니어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찰나 'SKY 캐슬' 진진희를 만나게 되었고 '비비드한 컬러의 옷이 잘 어울리고 방송연예과를 졸업한 단역배우 출신'이라는 설정을 가진 인물에서 진진희 성격을 보았다. 눈에 딱 들어오더라. 방송생활을 경험한 인물이니 비주얼적으로 어필하면서 화려한 면들을 강조했다. 스타일리스트와 대화를 많이 나눴고 원색 계열 의상과 과감한 액세서리 등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인물의 '내적'인 면은 어땠나?
- 발랄하고 밝은 면은 저와 비슷했지만 이렇게 큰아들을 키우는 엄마 역은 처음이었다. 덜컥 엄마 역을 맡았지만, '흉내' 내는 것처럼 보이는 건 싫었다. 똑같이 포옹해도 '남자아이'를 안아주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그런데 수한이(이유진 분)를 보는 순간 그냥 정말 사랑스럽더라. 아이와 대화도 많이 하고 정을 쌓았다. 처음에는 동생 같다가 나중에는 아들 같더라. 6회가 정점이었다. 아이를 안아주면서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래' 그 신을 찍고 수한이가 정말 내 아이처럼 느껴졌다.
수한이가 더 애틋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겠다
- 그랬다. 우리 애가 쌍둥이 형들보다 (연기를) 못하면 속상하더라. 예빈(이지원 분)은 연기 경험이 많아서 연기를 잘하는데 우리 수한이는 이게 첫 작품이라 카메라가 뭔지도 모른다. 가끔 '더 잘해야 한다'고 화도 내고 그랬지.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수한이가 '엄마, 저는 이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건데 왜 사람들은 제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해요?'라고 물어보더라. 깜짝 놀랐다. '그건 수한이 입장에서 자연스러워야지 유진이 입장에서 자연스러워서는 안 돼'하고 설명해주는데 한편으로는 '나도 많이 성장했네' 싶더라. 유진이와 같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어요.
조재윤과의 연기 호흡도 인상 깊었다
- 재윤 씨 덕에 진진희 캐릭터가 예쁘게 잘 살았던 거 같다. 진희를 정말 귀여워해 줬다. 인간 오나라를 예뻐해 줬던 거 같다. 항상 예쁘다, 귀엽다 해주시고 '찐찐'이라는 애칭도 만들어줬다. 그러다 보니 진진희네 집만 이상적인 집만 되어버렸다. 진진희만 두고 봤을 때는 얄미운 캐릭터가 될 수 있었는데 남편이 보듬어주고 커버해줘서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보일 수 있게 됐다.
진진희와 황치영(최원영 분)을 두고 망상을 펼치는 시청자들도 있었는데
- 황치영을 좋아한다는 설정이 있었다. 대본 리딩 때부터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이야기를 들었고 그건 재윤 씨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내가 이렇게 잘 해주면 뭐하냐"고 농담하곤 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진진희 가족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게 그려지면서 작가님께서 '불륜 이미지'로 가는 게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수위를 낮춰주셨더라. 다행히 '팬심'에 그쳤고 멋진 동네 오빠를 보는 눈빛 정도로 연기 톤도 잡았다.
진희는 한서진을 롤모델로 삼는 캐릭터다. 실제로 오나라도 염정아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던데
- 염정아 선배님은 20대 초반부터 제 롤모델이었다. 영화 '간첩' 때 한 번 뵈었는데 그때는 같이 붙는 신이 없어서 막연히 바라보기만 했었다.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미세한 표정변화 등등을 살폈다. 정말 대단하더라. 그런데 함께 연기해 보니 더 존경스럽고 멋졌다. 'SKY 캐슬'의 일등 공신은 역시 염정아 선배님이다. 잔주름, 땀구멍 하나하나까지 연기를 하더라. 연기 외적인 면도 훌륭하다. 후배를 챙기는 모습도 닮고 싶다. 이번 기회로 염정아 선배님을 더 존경하게 되었다. 이 역할을 쉽게 결정한 건 한서진을 롤모델로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내 운명이다'라고 생각한 거지.
'품위있는 그녀' '나의 아저씨들' 'SKY 캐슬'까지 자유롭게 애드리브 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였다던데
- '품위있는 그녀' 'SKY 캐슬'에서는 애드리브를 자유롭게 했다. '품위있는 그녀' 김윤철 PD님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연기하기를 바라셨는데 저와 정상훈 씨만 자유롭게 풀어주셨다. "더 철없이 방방 뛰라"면서.
왜 PD들은 오나라에게 '애드리브' 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걸까?
- 무대에서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오래 해왔기 때문인 거 같다. 제게 바라는 모습도 그런 모습이니까. 풀어주면 잘 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인 거 같다. 분위기를 업 시키면서 이 장면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지켜보시는 거 같다. '나의 아저씨' 김원석 PD님은 애드리브 없이도 정희를 마음껏,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게끔 도와주셨다.
'품위있는 그녀'부터 대중의 눈에 띄기 시작했지만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잔뼈가 굵었다
- 뮤지컬 배우가 오랜 꿈이었다. 왕성하게 활동해왔고 이 길만이 제 길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미래를 생각했을 때 '오래, 길게 본다'면 매체에서도 활동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른이 넘어서 새롭게 신인의 마음가짐으로 브라운관, 스크린을 찾아온 거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로 오나라를 알게 됐었다. 그 무렵 함께 했던 배우들이 다 잘 됐으니 오나라 역시 잘 되리라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 그러고 보니 저와 함께 한 배우들이 모두 잘 됐다. 김무열, 신성록, 엄기준 등등. 하하하. 오나라를 거쳐 가면 다 잘 되나 봐! 지나고 보니 철이 좀 들었을 때 인기를 얻게 된 게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깨가 들뜨고 그럴 수도 있는데 이런 관심이 기쁘고 감사하게만 느껴진다.
다시 무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나?
- 돌아가고 싶다. 일부러 안 한 건 아니다. 한 우물을 파야 하는데, 뭔가 매체에서 성공을 거두고 나서 돌아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 내년쯤에는 좋은 작품으로 만나 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대에서 배운 성실함을 잃지 않도록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 그게 제 꿈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