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올해 임직원들에게 던진 화두는 ‘빠른 실패’다. 지속 가능한 성공을 위해선 실패를 두려해선 안된다는 뜻이다.
신 회장의 복심으로 불리는 황각규 부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빠른 실패도 좋지만 빠른 성공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롯데쇼핑 e커머스본부의 활약을 주목해달라고 당부했다. 황 부회장이 지목한 ‘롯데의 빠른 성공’을 이끌고 있는 핵심 인물을 만났다.
롯데쇼핑 e커머스본부 AI COE(AI Center of Excellence, 인공지능 전문가그룹)센터장인 김혜영 상무(47)가 바로 그다.
◆이직 3년만에 고속 승진…‘e커머스 성공에 대한 기대와 지지 반영”
지난 18일 롯데 심장부인 잠실 롯데월드타워 오피스동 25층에서 만난 김 상무는 임원급 이하 간부직원의 승진 인사를 논의한 뒤여서 다소 상기된 얼굴이었다.
사실 그는 지난해 말 롯데 정기임원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이었다. 롯데로 이직한 뒤 3년여 만에 상무보B-상무보A-상무로 매년 승진해 사실상 ‘유리 천장’을 깬 인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자신을 주목하는 시선을 잘 알기에, 여성 임원직으로서 책임감이 상당하다. 특히 e커머스본부는 비단 기술직뿐만 아니라 MD직군에서 여성들이 많은 터라 김 상무는 ‘왕언니’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같은 여성으로서 가지는 동질감이 있죠. 평소 업무 고민뿐만 아니라 엄마로서, 아내로서 고충을 같이 공유하는 편이에요. 미혼 직원들도 각자의 고민이 있을 테고 저도 한 사람의 ‘직장 여성’으로서 제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김 상무는 이른바 ‘여성임원의 고속 승진’에 대해서는 겸손한 모습이었다. “제가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보다 롯데 경영진이 AI와 e커머스를 중요시 여겨 단행한 인사라 생각해요. 그동안 제가 보여드린 성과가 적어서 부끄럽지만, 앞으로 성과를 더 내라는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로 여기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매년 신년사 등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유통업계 AI 기술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업계 1등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드러낸 바 있다.
◆롯데백화점 AI 챗봇, IBM 씽큐서도 인정…기술보다 ‘제품 가치’ 중요
그동안 김 상무가 주도한 프로젝트도 신 회장 등의 기대에 부응해 제법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롯데쇼핑이 2017년 말 선보인 AI 챗봇 ‘쇼핑 어드바이저’는 타사와 차별화된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롯데백화점의 패션, 식품 등 모든 상품에 걸쳐 쇼핑 어드바이저가 고객에게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고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소비자와 대화를 통해 상품 정보를 제공한다.
IBM AI 프로그램 ‘왓슨(Watson)’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쇼핑 어드바이저는 지난해 전세계 왓슨 개발자 콘퍼런스인 ‘IBM 씽큐(Think Q)’에서 우수 사례로 선정돼 발표, 더욱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롯데의 쇼핑 어드바이저는 백화점 내 모든 상품을 추천할 수 있고, 고객과 대화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단어 수준의 AI 챗봇과 달리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내년까지 롯데마트, 롯데홈쇼핑 등 그룹 유통 계열사 전체로 서비스를 확대·구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상무는 AI 기술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롯데만의 차별화된 제품력, 즉 ‘상품의 가치’라고 강조한다.
김 상무는 “AI 기술을 통해서는 고객의 행동패턴을 파악하게 되고 그런 데이터를 축적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안할 수는 있다”면서 “그런데 정작 e커머스를 통해 내다 팔아야 하는 것은 상품인데 그 상품을 우리 고객이 얼마나 좋아하고, 그 가격에 맞게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지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롯데 AI COE센터에서는 “우리가 우리의 상품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특히나 한국이 인터넷과 IT 기술의 발달로 e커머스 시장이 급속하게 몇년새 성장하면서 고객의 수준이 높아진 것에 발맞춰야 한다는 절박감이 크다.
김 상무는 “소비자인 고객 입장에서 오픈 마켓이냐, 소셜커머스냐 하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는 필요가 없다. 더 차별화된 제품을 얼마나 적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느냐로 생각이 귀결되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가치있는 상품을 롯데가 얼마나 확보할 수 있고, 그에 맞는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느냐가 중요한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빅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시스템’ 롯데제과→전 계열사 확산 목표
2017년 9월 롯데제과에서 AI 기술을 적용해 ‘빼빼로 깔라만시 상큼요거트’ 등이 출시된 바 있다. 당시에는 빼빼로 하나를 새로 출시하면서 ‘거창하게 무슨 AI 운운이냐’는 업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도 알고보니 김 상무의 작품이었다. IBM의 AI 왓슨을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건강을 추구하는 소비자 트렌드를 반영했다는 것.
실제로 당시 제품 출시에 앞서 롯데제과는 8만여개의 인터넷 사이트와 식품 관련 사이트에 게재된 1000만여개 소비자 반응 및 SNS 채널 정보를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축적해 식품, 과자, 초콜릿 등 카테고리별로 현재 소비자들이 좋아하거나 인기를 끌 가능성이 높은 소재와 맛을 도출해낸 것이다.
김 상무는 “특히 제과 시장은 너무 트렌디하고 취향도 다양하다. 때문에 수많은 데이터 수집을 통해 하나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를 ‘빅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 시스템이 롯데제과에선 거의 정착 단계로, 빼빼로에 이어 ‘꼬깔콘 버팔로윙맛’도 그 결과물이다. 올해는 이 시스템을 전 계열사로 확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시스템도 결국은 롯데의 제품이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의 하나다. 김 상무는 5년, 10년 뒤에는 사실 AI 기술 같은 최첨단 기술도 결국은 ‘평준화 기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때문에 결국 고객의 선택을 받으려면 기술보다 서비스, 제품력이 중요한 평가의 잣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마디로, 업(業)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10년여 전만 해도 회사에서 엑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람은 거의 드물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엑셀보다 훨씬 쉬운 사무용 툴이 나왔죠. AI 기술 또한 언젠가는 그리 보편화된 기술이 될 겁니다. 늦어도 10년 뒤에는 이른바 AI 기술에 대해서도 기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환멸의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이 얼마나 차별화되고, 고객들에게 얼마나 만족감을 줄지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유통업은 특히 그렇다는 게 김 상무의 생각이다.
“누가 더 빨리, 좋은 기술과 제품을 가져와서 시장을 이끌 것이냐가 싸움의 본질이 되겠죠. 빠른 실패는 결국 빠른 성공과 동일어 같습니다. 저희도 더욱 노력해서 ‘빠른 성공’을 하고 싶네요. (웃음)” 그의 다음 행보, 빠른 실패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 김혜영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본부 상무 프로필
△1971년생 (만 47세)
△서울대 계산통계학과(학사), 동 대학원 전산과학 전공(석사)
△KT 통신망 연구소 전임연구원
△NHN 엔터테인먼트 TOAST PC 사업실장
△롯데미래전략연구소 이노베이션랩 담당임원
△롯데그룹 AI추진 TF장
△롯데미래전략연구소 디지털혁신 TF2장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본부 AI COE(인공지능 전문가그룹)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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