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묵은 민족대표 33인 중에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많은 민족대표들이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 모진 고생을 하며 일본제국주의와 싸웠지만 양한묵은 옥중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순국한 유일한 민족대표다.
양한묵은 지난 1919년 2월 21일 권동진과 오세창으로부터 “독립만세운동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듣고 2월 27일 손병희, 이종일, 이종훈 등의 동지들과 함께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에 제출할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인사동에 있는 태화관에서 개최된 독립선언식에 천도교계를 대표해 민족대표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출동한 일본 경찰에 체포돼 서대문감옥(이후 서대문형무소로 변경)에 수감됐다. 양한묵은 가혹하게 취조하는 일본 경찰에게 “독립을 계획하는 것은 조선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양한묵은 수감된 후 일본 경찰의 가혹한 고문을 당했고 1919년 5월 26일 서대문감옥에서 순국했다. 비극적인 것은 아직까지도 양한묵의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고문은 강제로 수조에 머리를 집어 넣거나, 코나 입에 물을 마구 들이부어 호흡을 곤란하게 해 고통을 줬던 고문이다. 이 고문을 당하면 폐에 물이 차서 흉막염에 걸려 매우 고통스럽게 죽기도 했다. 손톱찌르기 고문은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찔러 고통을 줬던 고문이다. 입 속까지 마구 찔러 고통을 주기도 했다.
상자 고문은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 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했다.
벽관 고문은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해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줬다.
양한묵의 유해는 1919년 서울 수철리(현재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안장됐다가 천도교 측의 주선으로 1922년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앵무산에 이장됐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시절 일어난 박종철 고문치사 떠올라
당시 건물은 없어지고 밭으로 조성돼 있었던 곳에 안채와 사랑채 등을 복원하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우물과 장독대, 감나무 등도 보존해 후손을 위한 학습의 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 마을의 이○○(현 소유주)의 증언에 의하면 1957년쯤 5칸 접 집이었던 초가를 허물었다고 한다. 영신리에는 양한묵이 어린 시절 공부하며 학문을 쌓았던 서당 ‘소심제’와 선조를 모신 ‘덕촌사’도 있다. 1991년 영신리에 세워진 양한묵 순국비는 지난해 생가로 이건됐다.
영신리에는 양한묵이 어린 시절 꿈을 키웠던 곳으로 알려진 비둘기 바위와 송림 등의 자연자원이 남아있다. 해남군은 앞으로 역사적 고증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활용할 예정이다.
양한묵 생가 옆에는 기념전시관이 있다. 넓이는 81㎡다. 해남군은 지난해 하반기 양한묵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독립 운동 역사체험마을 사업으로 양한묵 기념전시관을 건립했다. 양한묵 기념전시관 외형은 서대문형무소의 이미지를 따서 지었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해남군에서도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이날 오전 10시 군민광장에서 독립유공자 유족과 ‘해남항일운동 순국열사 애국지사 추모사업회’ 회원, 군민, 학생 등 600여명이 참여하는 만세운동 재현이 있을 예정이다.
만세운동 재현 후에는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기념식이 진행되며, 특히 추모사업회 주관으로 항일운동 순국열사와 애국지사를 위한 합동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현장에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사진전과 함께 페이스페이팅 등도 진행된다.
해남군에선 1919년 4월 6일과 11일, 해남읍 장날을 맞아 1000여명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또한 3·1운동 1주년이 되던 1920년 4월 23일에는 우수영에서 50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만세 행진이 있기도 했다.
옥천면에선 양한묵 생가 복원과 함께 매년 광복절을 즈음해 무궁화꽃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양한묵 생가 외에도 해남군에는 좋은 여행지가 많다. 영화 ‘명량’의 역사적인 소재인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돌목은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의 우수영과 전남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에 있는 해협이다.
길이는 약 1.5km, 폭이 가장 짧은 곳은 약 300m,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20m, 유속은 11.5노트(초속 약 5.9m)다. 굴곡이 심한 암초 사이에서 소용돌이 치는 급류가 흐르는데 옛날에는 이러한 빠른 물길이 암초에 부딪쳐 튕겨져 나오는 바다 소리가 20리(약 7.9㎞)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1984년 10월 울돌목 위로 진도대교가 설치됐다.
해남군에도 금강산이 있다. 해남군의 금강산은 해남군의 해남읍 구교리와 마산면 장촌리 사이에 있다. 고도는 488m다. 마산면의 맹진리와 화내리를 경계 짓는 만대산과 옥천면과 해남읍을 경계 짓는 만대산을 좌우로 거느리고 있다.
◆해남군,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대대적인 기념행사
해남군에는 도보여행을 하기 좋은 등산·산책로도 많다. 송지면에 있는 ‘땅끝 천년숲옛길’은 총 52km다. 땅끝길(16.5km), 미황사역사길(20km), 다산초의교류길(15.5km) 등 3코스의 테마로 나뉘어져 있다.
‘땅끝 천년숲옛길’은 국토순례 1번지다. 땅끝마을 갈두항 맴섬 앞에서 시작해 강진 세곡제에 이르는 길이다. 땅끝 천년숲옛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해남군의 역사와 문화재를 탐방할 수 있다. 작은 오솔길을 활용해 자연스러운 숲길도 조성했다.
겨울 끝자락이지만 겨울 바다를 보고 싶으면 송지면 통호리에 있는 ‘사구미해수욕장’에 가는 것이 좋다. 사구마을 앞에 있고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아 가족들이 한적하게 휴양하기 좋다. 약 1.5㎞의 백사장과 함께 송림이 조성돼 있다. 일몰의 장관도 일품이다.
해남군에는 불교와 관련된 관광 명소들이 많다.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대흥사는 사적 508호로 지정된 사찰이다. 고려시대 이전에 지어졌다. 안에는 국보 제308호 ‘대흥사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과 국가 지정 문화재 7점, 시·도 지정 문화재 6점 등이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중요한 사찰이다.
삼산면 봉학리에는 70년대 대표적인 저항 시인인 고 김남주의 생가가 있다. 김남주 생가는 2014년 12월 방 3개를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해 운영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은 김남주기념사업회가 하고 있다.
이 외에 진흥사,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 땅끝탑, 땅끝전망대 등도 해남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해남군에는 유스호스텔, 민박 등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이 있다. 삼삼군과 해남읍에는 맛집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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