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러 차례 속도 조절론을 제기했다. 그는 28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단독회담 모두발언에서도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며 "서두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화기애애한 듯했던 분위기가 오후 들어 갑자기 틀어진 건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북한의 비핵화가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님을 방증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번 회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지난해 6월 첫 정상회담에서 도출한 싱가포르 합의사항을 어떻게 더 구체화하느냐가 관건으로 꼽혔다. 두 정상은 당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큰 그림에 합의했지만, 이후 구체적인 합의이행 방안을 둘러싼 실무협상이 줄곧 공전했다.
하노이 회담의 최대 화두는 단연 비핵화 방식이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면 미국이 제재완화 등의 보상을 안겨주는 '주고 받기식' 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유력 외신들은 영변 핵시설을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이자, 북한의 핵연료 제조 중심부라고 소개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에서 북한의 핵연료 생산을 막아낸다면,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최소한 '동결'시키는 셈이라고 봤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이번 회담의 방점을 영변 핵시설 무력화에 찍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면 자신의 어떤 전임자도 이루지 못한 진전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이 제재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변 핵시설뿐 아니라 다른 모든 핵 관련 시설을 폐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미래 핵전력 보강 가능성을 차단하는 셈이다. 이미 보유한 핵무기와 핵물질, 미사일 등 재래식무기 목록을 신고하는 등 이른바 '플러스 알파(+α)'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 동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완전불가역적인 폐기를 주장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핵·미사일 실험을 그만두기로 했다면서도 "비핵화를 줘야 제재 완화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을 향해 "핵을 다 포기해야 한다"며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회견에서 북한에 영변 외에 다른 곳에도 대규모 핵시설이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미국은 북한에 '영변+α' 수준의 핵폐기를, 북한은 미국에 모든 제재 완화를 먼저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당초 입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북한이 기존 핵·미사일 실험 중단 약속에 영변 핵시설 폐기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제안했어도 트럼프의 요구엔 미치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끝내 북한에 '영변+α'를 고집한 건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탓이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영변 핵시설 동결에 합의했지만, 2002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하자 영변 핵시설 동결 해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추방,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맞불을 놨다. 이듬해에는 결국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기에 이른다. 북한은 2007년에도 6자 회담을 통해 영변 핵시설 폐기 및 IAEA 사찰단 수용 등에 합의했지만, 이듬해 냉각탑만 폭파했을 뿐 분위기가 틀어지자 약속을 파기했다.
1994년 이후 25년간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합의와 파기가 되풀이된 만큼 전문가들은 영변 핵시설 폐기 합의가 유효하려면 IAEA 같은 국제기구의 엄격한 사찰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영변 핵시설 가운데 어느 시설이 해체됐는지, 우라늄과 플루토늄 재고는 얼마나 되는지, 핵개발 관련 장비와 인력·문서 등 세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 대표는 뉴욕타임스(NYT)에 "이런 게 바로 비핵화"라면서도 "그러나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이미 30~60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변 외에 다른 장소에도 비슷한 핵시설을 하나 이상 갖고 있다고 본다. 트럼프 행정부가 '+α'에 대한 조치 없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된 배경들이다.
김 위원장에게 핵무기는 체제보장을 위한 마지막 담보물이다. 같은 이유로 상당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핵보유국 지위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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