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내년에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다. 민주당의 하원 지배, 지난 대선에서 러시아 개입을 다루고 있는 뮬러 특검 청문회 개최, 대선 당시 트럼프 최측근이었던 마이클 코언의 트럼프에 대한 불리한 결정적인 증언 등은 트럼프를 궁지로 몰고 있다. 재선에 성공하지 못하면 “트럼프는 감옥에 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트럼프의 국내정치적 상황이 절박하다. ‘미·중 전략경쟁’의 발동과 북핵문제는 트럼프의 거의 유일한 업적에 속하고, 특히 북핵문제는 가장 가시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개발과 이로 인한 유엔 제재로 인해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북한 경제를 회생시킬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유엔 제재의 직격탄은 김정은 체제를 뒷받침하는 군부와 지배계층에 가장 큰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동시에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은 군부의 조직 이해 기반을 크게 손상시킬 수 있는 사안이어서 김 위원장으로서는 성과가 필요하였다. 북한과 같은 체제에서 지도자는 완전무결해야 해서, 그가 추진한 북·미협상은 반드시 '성공'이라 할 수 있는 성과를 가져와야 했다.
미국과 북한은 각기 상대의 절박함을 자신들의 합리성으로 해석하였다. 각기 상대를 압박하여 '더 나은 딜'을 추구하면서 낙관적인 결과를 기대하였다. 당초 예상하였던 영변의 북핵 제반 시설과 역량 대(對) 남북한 교역의 예외성 인정, 인도주의적 교류, 실질적 종전 선언, 북·미 연락사무소의 개설을 교환하는 것을 넘어 각기 더 많은 것을 추구하였다. 미국은 영변 이외의 추가 시설들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였고, 북한은 2016~2017년 채택된 유엔 제재 가운데 민생 관련 제재를 해제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양측은 벼랑 끝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회담은 결렬되었다.
일각에서는 이 회담의 결렬로 인해 북·중 간의 밀착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북·중 간에는 신뢰의 부족 문제가 여전하다. 중국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후견하는 태도는 지양할 것이다. 북핵문제 협상이 여전히 진전되지 않았고, 미·중 전략경쟁에서 북핵문제가 유일한 미·중 간 협력 사안으로 남기를 바라는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의도대로 연루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북한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 해제와 경제발전은 미국과의 협상에 달려 있다.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는 이번 협상에서 대단히 좌절했겠지만, 미국과 추후 협상의 여지를 남겨둔 이유이다.
트럼프는 미국에 대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제거하는 선에서 북한의 핵을 인정하고, 경제제재를 해소해 주는 '나쁜 딜'을 거부했다. 이는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는 하원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없고, 동맹국 관계의 파국이 가져오는 비용 그리고 그가 '사업 딜' 자체에서의 손해를 참을 수 없어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비록 북·미 양국이 서로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었지만, 현재의 간극을 메우기에는 요원하다. 중국이나 일본의 중재 역할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만이 유일하게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이는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의 마지노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회가 없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에게 참혹할 것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잠 못 이루는 밤이 길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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