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동일본 대지진이 스타트업 키운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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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아주닷컴 편집장
입력 2019-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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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을 강타했던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오는 11일로 8년을 맞는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관측 사상 최대치인 리히터 규모 9.0을 기록한 이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와 행불자는 2만5949명(일본 경찰청 집계),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피난민은 5만명, 산업시설과 가옥 붕괴 등 직접적 경제 피해만 160조~250조원 규모다. 후쿠시마(福島) 원자력 발전소의 대규모 방사능 유출은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은 채 8년을 보냈다. 

당시 일본 국내에서 자주 쓰였던 말이 있다. ‘국가 존망의 위기’라는 말이다. 일본 사람들은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재해로 나라가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섰다고 생각했다. 일본 정부는 국가 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부흥청(復興廳·Reconstruction Agency)’이라는 중앙정부기관까지 만들어 동일본 대지진의 부흥에 힘쓰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이 몰고 온 초대형 쓰나미 속에서도 살아 남은 유일한 소나무 한그루. 일본 사람들은 이 소나무를 부흥의 상징으로 여기며 '기적의 한 그루 소나무'라 부른다. 

부흥에 힘쓰는 곳은 부흥청과 같은 정부기관뿐만이 아니다. 대지진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또다시 닥칠 수도 있는 재난을 기술로 극복하기 위한 창업에 나서면서 부흥에 일조하고 있다. 이처럼 자연재해로 인한 재난을 극복하려고 창업한 스타트업을 ‘감재(減災) 스타트업’이라 부른다.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LINE)이 대표적이다.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누군가와 연락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TV로 보게 된 이해진 라인 회장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결국 소중한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 깨닫고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라인을 선보였다.

8년 전 3월 11일, 쓰나미를 피해 피난소를 찾았던 시마다 마사유키(島田昌幸)씨는 배급 받은 건빵이 딱딱해 잘 씹지 못하던 할아버지,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건빵을 섭취해 두드러기가 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봤다. 이때 시마다씨는 어린이와 고령자가 피난 중에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식량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비축식량의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물과 전기·가스 공급 없이 먹을 수 있고 5년간 비축이 가능한 ‘방재 젤리’ 개발에 성공했다. ‘방재 젤리’ 속에는 7가지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들어 있다. 3년 전, 펀드로부터 20억원을 투자 받아 ‘원테이블’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일본의 NASA라 불리는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도 '방재 젤리'에 관심을 보이며 지금은 공동으로 우주식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영양적 균형을 중시해 제조된 방재 비축식품 '라이프 젤리'. 5년의 비축이 가능하다. [원테이블 제공]
 

도요타자동차 출신 기술자도 대지진을 겪고 난 뒤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지진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전력이 부족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터득한 야마모토 겐이치(山本憲一)씨는 리튬이온 건전지를 만드는 스타트업 ‘I‧D‧F'를 설립했다. 야마모토씨는 건전지뿐만 아니라, 차량 운전 중 쓰나미에 휩쓸려도 물 위를 떠다닐 수 있게 도와주는 좌석시트 커버를 개발해 정부지원금을 받아냈다.

이 밖에도 지진 발생 후 20분 이내에 쓰나미로 인한 침수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한 업체,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 전기를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스타트업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도쿄상공 리서치에 따르면,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인 2010년 도호쿠 지역의 신설법인 수는 3805건이었지만, 2017년에 5207건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동일본 대지진으로 초토화된 도호쿠 지방에서 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쓰나미가 마을을 집어 삼키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돼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줬던 동일본 대지진. 8년이 지난 지금도 부흥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하지만, 다시 닥칠 수도 있는 지진에 대비하며 재난을 기술로 극복하려는 모습에서 희망이 느껴진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보다 많은 사람이 이익을 얻고 더 많은 것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대지진을 겪은 도호쿠 사람들도 빌 게이츠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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