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형사사건 전문 배철욱 변호사.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무죄추정의 원칙'은 즉,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이다. 고소를 당하든, 수사를 받든, 구속이 되든, 형사재판을 받든,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받는다는 것이다. 더 따져보기 전에, 옳고 맞는 말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변호사로서 수사와 재판을 경험하다보면, 무죄추정의 원칙은 말그대로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현실에서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드물고, 무죄추정이 아니라 유죄추정 이라는 비아냥에 오히려 공감될 때가 많다.
누군가에 의하여 고소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시작부터 죄인 취급을 받으며 수사를 받게 된다. 이것은 비단 필자의 경험만은 아닐 것으로 확신하는데, 변호사들은 대부분 그리고 한 번이라도 수사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수사기관보다는 덜하지만, 법원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특히, 수사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영장실질심사는 유·무죄 판단의 전초전이라고 볼 정도로 피의자에게는 중요하다.
구속되면 대부분 무방비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원은 수사기관이 일방적으로 제출한 수사기록만 보고 영장을 발부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피의자나 변호인은 수사기록을 열람할 수 없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제한된 소명의 기회를 가질 뿐이다. 무죄추정의 원칙 관점에서 볼 때, 현행 영장실질심사는 무죄추정을 받는 피의자가 방어권을 행사하기에 너무도 인색한 절차이며, 이런 이유로 제도개선의 필요성도 많이 제기된다.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하는 필자에게, ‘순진하다, 이상적이다, 현실을 모른다’등의 뻔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필자 역시 원칙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은 그저 미사여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우리 헌법 제27조 제4항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국민의 명령이라면, 무죄추정의 원칙 역시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 대한 국민의 명령인 것이다. 헌법을 마땅히 따라야 하는 국가기관과 공무원들은 오로지 그 실천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헌법 즉 국민의 명령은 상황에 따른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판단되거나, 적용이 배제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다.
둘째, 사람은 언제나 오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볼 때, 인간이 오판한 사례는 수없이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지적하는 오판의 사례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 것들이 많다.
오판의 가능성은 늘 존재하는 만큼, 판단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시 원점에서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 즉, 피고인을 무죄로 생각하고 판단해보자는 것이 바로 무죄추정의 원칙의 근본 정신일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실현되는 과정은 말 그대로 피곤할 수 있고, 때로는 수사와 재판의 효율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가끔은 실제 범인이 법의 단죄를 피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열 사람의 범죄자를 놓칠지언정,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고 했지,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있더라도 열 사람의 범죄자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은 존중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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