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28일 양일간에 걸쳐 개최된 2차 북미정상회담, 일명 ‘하노이 회담’ 성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회담의 성공과 실패에서부터 회담의 결과 유무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북미 간에 비핵화 문제에 합의를 보지 못한 결과를 두고 회담의 실패와 결렬이라는 비난의 시각이 만만치 않다. 반면에 결렬과 실패가 아니라며 트럼프 미 대통령의 ‘다시 만날 의사가 있다’는 발언에 근거하여 미국과 북한이 합의를 잠정 유예한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이런 섣부른 결론은 위험하다. 물론 3차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될지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며 종결되지 않은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는 아직도 미제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하노이회담에 대한 완전한 평가는 유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문가들의 성급한 단언은 자제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이야말로 냉철하게 이성을 가지고 ‘협상론’이라는 큰 틀에서 하노이회담의 성과에 대한 진단을 내려야한다.
협상은 서로가 원하는 바를 밝히고 이의 수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과정이다. 서로가 원하는 바가 회담의 의제이며 이의 수용 타당성을 놓고 설득하고 거래하려는 과정이 협상이다. 여기서 협상국들은 이해당사자이기에 이해득실을 따지게 된다. 절대적 이익인지 손해인지, 아니면 상대적 이익인지 손해인지를 계산하게 된다. 상대방의 의사와 진의를 파악하면서 거래를 성사하기 위한 흥정을 개진한다. 국제정치에서 절대적 이익은 전쟁이나 힘으로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협상에서는 상대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상대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만이 거래를 성사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협상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의제의 명확한 설정이 전제된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협상 전략은 결국 협상국의 위치와 위상에 따라 결정된다.
협상론은 협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의제가 ‘크게’ 느껴지거나 ‘작게’ 보인다고 한다. 게다가 강국이 약소국에 비해 협상의 주도권 더 쉽게 장악하고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과 같은 폐쇄국가에게 유일한 생존 도구가 핵무기이고 이를 생산하는 능력이라면 이를 폐기하라는 그 어떠한 요구도 매우 위협적이고 ‘크게’ 느껴질 것이다. 즉, 북한에게 미국의 모든 요구는 ‘엄중하게(빅딜, big deal)’로 느껴질 것이다. 반면, 미국과 같이 초강대국에게 북한의 핵능력과 시설은 그 정도까지 높은 수준의 위협으로는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 또 핵 폐기를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별 일 아닌 것(not a big deal)’으로 치부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북 양국은 북한 비핵화 의제를 기밀에 부쳤다. 두 나라가 함구하는 동안 언론과 전문가들은 의제의 성격, 범위와 규모를 추측해야만 했다. 이런 현실은 1차 북미정상회담이 끝나고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도 극명하게 입증됐다. 이후 있었던 미북 고위급회담에서 논의된 두 나라의 협상 의제를 알아내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미북 간의 협상 의제를 추측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관찰자들은 미북 양국 간의 합의 결과를 ‘빅딜’과 ‘스몰딜’의 프레임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빅딜’과 ‘스몰딜’의 프레임에 우리가 갇히게 된 이유는 북미 양국 간에 합의가 도출 가능한 요구사항의 수준과 범주에 사고가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요구사항의 범위와 대상의 규모와 수량, 이행 범위 및 수용 가능성과 불가능성 등에 따라 이를 이른바 ‘빅딜’과 ‘스몰딜’로 정의하면서 스스로 자승자박하는 과오를 범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그러나 모두의 허를 찌른 ‘노딜’이었다. 그럼 ‘노딜’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를 추적하다 보면 결국 북미 양국이 서로에게 원했던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들의 요구사항이 곧 하노이회담의 공식 의제였다는 의미다. 이들 의제는 결론적으로 회담 의제를 조율하기 위한 고위급회담에서 논의했던 바보다 더 광범위한 것으로 둔갑하면서 ‘노딜’이라는 결과를 자초했다.
이른바 ‘스몰딜’은 의제에도 없었던 것이 탈로 났다. 1차 회담과 달리 종전선언, 연락사무소와 인도적 지원문제 등이 더 이상 두 나라의 관심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2차 회담에서 미북 양국은 이른바 ‘빅딜’로 통 큰 합의를 보려했다. 이는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이 부부장의 기자회견에서 애당초 북한이 2016년 이후의 UN 경제제재 11건 중 5건의 해제를 목표로 하고 회담에 임한 사실에서 드러났다.
하노이회담에서 얻은 귀중한 결과는 미북 양국이 서로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공개한 사실이다. 이는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그리고 예정에 없던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하노이회담은 관찰자와 세계에게는 ‘대성공’적인 회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큰 수확이 있었음에도 이분법적 평가 요구에 밀려 전문가들은 이를 간과하는 과오를 범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이 주장했을 것이라는 ‘영변+α’에서 ‘α’를 읽어내기가 가능했고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와 해제의 범위가 밝혀지는 쾌재가 있었다.
회담 종결 후 트럼프는 우리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건설적이고 효과적인 중재를 위해 미북 간의 의제 파악이 필요했다. 그런데 하노이회담이 이런 수고를 덜어준 셈이다. 결국 미국이 원하는 것은 핵시설의 폐기만이 아니었다. 북한의 인권 상황의 개선이 모든 사안의 전제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트럼프와 폼페오가 의제에도 없었던 오토 웜비어 사건과 일본인 납치 문제를 회담의 첫 의제로 상정한 사실로 입증됐다.
그 다음은 핵과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다. 이를 북한의 수용하는 전제 하에 북한의 핵시설 사찰과 검증, 그리고 폐기 순으로 비핵화를 진행하는 수순이 밝혀졌다. 그러면 미국은 UN제재의 완화에 우선 앞장 설 것이고 차후 미국 자신의 제재 완화를 꾀할 것을 암묵적으로 전했다. 북한 비핵화 대상과 범위가 밝혀짐에 따라 우리의 중재도 이런 순위에 맞춰 전략적으로 추진되어야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