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한때 ‘패션의 성지’로 불리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을 찾았다. 메인 거리인 2차선 도로 양옆에 맞닿은 건물 중 무려 9개의 점포가 간판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한때 몰려드는 손님으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을 법한 주요 브랜드 점포의 창문에도 ‘임대 문의’ 딱지가 붙어 있었다.
공실이 된 지 수개월이 지난 점포도 비일비재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화장품·편집 매장이다. 슈즈숍 ‘캠퍼’가 영업하던 건물에는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줄이 끊어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점포 입구에는 몇 개월치 수도요금 지로 용지가 수북했다. 최근 회생 신청에 들어간 ‘스킨푸드’가 입점해 있던 3층 건물은 통째로 텅 빈 채 황량했다.
몇몇 점포는 리모델링 중이거나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들 매장까지 더하면 공실 점포는13개에 이른다. 2~3년 전만 해도 가로수길 대로변 저층(1~2층) 매장 130여개 중 패션매장은 70개가 넘었다. 패션 매장이 가로수길의 주요 업종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곳들마저 한두달 정도 영업하다 빠지는 대기업 계열 팝업 스토어만 드문드문 영업 중이었다. 그나마 영업 중인 일부 점포에도 직원들만이 보였고, 소수의 외국인들은 아이쇼핑을 하면서 들락날락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 삼성물산 패션부문만이 유독 가로수길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으며 상권 띄우기에 나서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말 이서현 전 삼성물산 패션부문(이하 삼성패션) 대표는 당시 삼성패션연구소의 분석에 따라, 새로 출시한 브랜드의 매장을 전부 이곳 가로수길에 냈다. 러닝 브랜드 ‘브룩스러닝’, 북유럽 인테리어 브랜드 ‘그라니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메종키츠네’, 패션 브랜드 10 꼬르소 꼬모 아울렛 ‘마가찌니’ 등이다.
당시 삼성패션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패션에 국한됐던 매장이 최근 라이프스타일, 식음료 등 밀레니얼 세대(1980년 이후 출생)·Z세대(1995년 이후 출생)의 취향을 겨냥한 매장으로 바뀌면서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20일까지는 ‘패션 파이브 스탬프 이벤트’도 진행했다. 메종키츠네, 그라니트, 브룩스러닝, 마가찌니, 에잇세컨즈 5곳을 방문하고 확인 도장을 찍으면 메종키츠네 스웨트셔츠 경품을 제공해 모객을 위한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벌인 것이다.
이 덕분에 지난해 11월에만 메종키츠네 300%, 나머지 4개 브랜드가 20~30% 반짝 신장했다. 지난해 월별 평균 매출과 프로모션 기간(2018년 11월)을 비교한 수치라는 게 삼성패션의 설명이다. 그러다 올해 들어서는 가로수길의 주요 브랜드 매출이 급감했다. 올해 1~2월 기준 메종키츠네는 100% 신장했지만, 나머지 브랜드의 신장률은 10% 안팎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소위 ‘오픈 발’이 다했을 뿐, 가로수길에서 패션 브랜드 매출 전망은 어둡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삼성패션 관계자는 “지난해는 가로수길 매장의 실적이 다 좋았다”면서 “올해 들어서는 미세먼지로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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