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계획 수립 전 과정에서 서울시의 의견이 반영되기 때문에 도계위 심의 기간은 단축되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가이드라인을 수용해야 도계위 탁상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합 등 관련 업계에서는 재건축의 첫 단계에서부터 서울시의 의견을 우선해야 해 아파트 주민들의 의견이 원천 차단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시는 정비사업 가이드라인인 '사전 공공기획', '서울시 아파트 조성기준' 등이 담긴 도시·건축 혁신안을 12일 발표했다.
시는 2030년까지 서울시내 56%에 달하는 아파트의 정비시기가 도래하게 됨에 따라 이들 아파트의 지역특성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서울의 도시 건축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겠다는 포부다.
가이드라인은 용적률, 높이뿐만 아니라 경관‧지형, 1인 가구 증가 같은 가구구조의 변화, 보행‧가로 활성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단지별 맞춤형으로 제시된다. 예컨대, 구릉지 일대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는 지형에 순응하는 건축물 배치를 원칙으로 하고 구릉지 경관을 고려해 건축물 높이에 차이를 둔다.
오는 4월쯤 4개 시범단지를 선정할 예정이다. 진희선 서울시 행정2부 시장은 “그간 사전단계가 없어서 주민들의 의견만 반영, 공공성을 많이 고려하는 도계위 심의에 많은 시간을 끌었다”며 “사전 기획단계에서 공공기능을 강화하면 사전에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서울시의 입김이 들어가면 주민들의 의견이 원천 차단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전 공공기획단계에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으면 “도계위 심의에 올려주지 않겠다”는 으름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 관계자는 “서울시가 재건축을 앞단에서부터 모든 것을 컨트롤하겠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서울시의 생각이 어떻든 우선은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이후 서울시와 밀당을 통해서 접점에 도달했다면 앞으로는 주민들의 의견이 원천 봉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 추진에 서둘러야 하는 조합집행부는 서울시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며 “집행부는 기부채납 등과 관련해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진땀을 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또 다른 관계자는 “도계위 심의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서울시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한편, '서울시 아파트 조성기준’도 새롭게 마련해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의 경우 단지를 넘어서 일대 지역을 아우르는 입체적 지구단위계획으로 확대 수립하도록 한다. 하나의 단지가 하나의 거대 블록(슈퍼블록)으로 조성됐던 것을 여러 개 중소블록으로 재구성해 중간중간에 보행로를 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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