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양회를 거치며 시진핑 체제 이후 강도 높게 추진돼 온 경제구조 개혁 작업은 속도 조절에 들어가게 됐다.
미·중 무역전쟁 등 대내외 악재에 따른 경기 하강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 개혁보다 안정에 방점을 찍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공산당 독재가 이뤄지는 중국에서 경제가 흔들리고 인민들의 삶의 질이 후퇴하는 것은 체제 동요와 직결된 문제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정부 업무보고에서 "세계 최대의 개발도상국인 우리나라에서 발전은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초이자 관건이며 절대적 진리"라고 외친 이유다.
10대 정책 방향의 하나로 전면적 샤오캉(小康·물질적으로 안락한) 사회 실현이 재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는 경제의 경착륙을 막는 데 주력하면서 민생 챙기기로 집권의 정당성을 유지한다는 게 중국 수뇌부의 결정이다.
지난해 개헌을 통해 연임 제한 규정을 없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장기 집권 여부를 가늠할 만한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됐다.
◆개혁 뒤로 미루고, 민생을 전면에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6.0~6.5%'로 발표했다. 지난해 목표치가 '6.5% 안팎'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0.5%포인트 정도 하향 조정한 셈이다.
중국 정부의 '바오류(保六·6%대 성장률 유지)' 방침이 시험대에 올랐다.
리커창 총리는 중국이 처한 현실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설명했다. 그는 "경기 하방 압력이 증대되고 소비와 투자가 부진해 실물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금융 등 분야에도 적지 않은 잠재적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 "자주적 혁신 능력이 강하지 못하고 관건적 핵심 기술이 부족하다"며 "일부 지방에서는 비교적 큰 재정수지 모순을 안고 있다"고 자평했다.
미·중 무역전쟁을 전후로 도드라진 중국 사회 전반의 문제들이 망라돼 있다.
이에 중국은 경제구조 개선을 위한 개혁 드라이브에 쉼표를 찍고 경제·사회적 안정을 도모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주요 정책 방향의 첫머리를 장식했던 공급 측 구조개혁이 올해는 후순위로 밀렸다. 산업 고도화 전략을 대표하는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에 대한 언급도 사라졌다.
구조개혁의 핵심인 과잉공급 해소와 노후 생산시설 퇴출, 국유기업 개혁 등은 올해 10대 정책 방향 중 여덟째인 '중점 분야 개혁 심화' 항목에 몰아넣었다.
구조조정의 일환인 좀비기업 처리 문제도 지난해 '파산' 혹은 '청산'에서 올해 '법에 의한 처분'으로 표현이 순화됐다.
대신 올해는 '거시경제 조정의 혁신·보완'을 전면에 내세웠다. 총 2조 위안(약 337조원) 규모의 감세 및 비용절감과 기업 융자난 해소 등으로 경제 활력을 제고하는 데 힘쓰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지방정부 채무 위험을 방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올해 인프라 투자용 지방채권 발행 규모는 2조1500억 위안(약 362조원)으로 전년보다 8000억 위안 증액됐다.
내수 활성화의 경우 지난해 정책 우선순위 7위에서 올해 4위로 뛰어올랐다. 소득 증대로 소비 능력을 확충하고 철도·도로·항만 등 고정자산 투자를 늘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경기 부양과 더불어 민생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올해 들어 달라진 점이다.
리커창 총리는 "취업은 민생의 근본"이라며 정부 업무보고 초반의 상당 부분을 취업 정책 설명에 할애했다.
올해 도시 신규 취업자 수를 1100만명으로 제시했는데, 중국 현지에서는 △직업훈련에 실업보험기금 1000억 위안 투입 △직업대학 100만명 추가 모집 △빈곤층·실업자 세금 감면 등이 관심을 끌었다.
또 지난해에 빠졌던 '2020년 전면적 샤오캉 사회 건설'이 올해 주요 정책 방향에 명기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가 목표인데 올해부터 2년간 6.2% 성장률을 기록하면 달성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먹고사는 문제는 공산당이 해결해주겠다는 강력한 신호다.
중국이 국정 운영의 큰 방향을 선회하도록 만든 미·중 무역전쟁의 완화 혹은 봉합을 위해 고심한 흔적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제조강국 건설을 위해 '중국제조 2025' 시범구를 설립하겠다는 공약은 올해 주요 정책 방향에서 제외됐다. 대신 전통산업의 개조·승격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중국의 산업 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는 미·중 무역협상 과정에서도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 중 하나다.
다만 인공지능(AI)과 5G 등 신흥산업 발전을 촉진하고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은 그대로 유지됐다.
미국이 원하는 금융·서비스 분야의 개방폭을 확대하되, 무역전쟁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겠다는 계획을 병기했다.
올해 입법 과정이 완료될 외상투자법(외국인투자법)도 마찬가지다. 무역전쟁 여파로 외자기업의 이탈이 가시화하자 불과 3개월 만에 뚝딱 만들었다.
외자기업의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강제적 기술이전 금지, 외자기업의 투자·사업 환경 개선 등이 골자다.
이와 함께 지난해 불거진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기업 전진 민영기업 후퇴) 논란을 의식한 듯 민영경제 보호 의지를 강조했다.
'민영기업 발전을 지지한다'에서 '민영경제 발전을 고도화한다'로, '재산권 제도를 보완한다'에서 '재산권을 확고부동하게 보호한다'로 톤을 높인 게 대표적이다.
◆올해 中 경제 향한 몇가지 질문
중국은 올해 재정 적자율을 전년 대비 0.2%포인트 오른 2.8%로 확정했다. 걷히는 돈보다 2조7600억 위안(약 466조원) 정도를 더 쓰겠다는 얘기다.
재정 적자율 설정과 관련해 의견이 엇갈린다.
가오페이융(高培勇)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은 "질적 발전 단계에서는 리스크 예방이 가장 중요하며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전장(戰場)"이라며 "재정 적자율을 3%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고 정부 방침에 힘을 실어줬다.
반면 화창춘(花長春) 궈타이쥔안증권 수석경제학자는 "기업 증치세(부가가치세)와 개인소득세 감세 규모를 감안하면 3%를 초과하는 게 당연하다"며 "올해 재정 적자율은 3.2% 정도가 적절하다"고 반박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적극적 재정정책을 쓰겠다"고 강조했지만 해가 바뀐 뒤에는 위기의식이 다소 완화된 분위기다.
어려운 상황인 건 맞지만 무리해서 돈을 쏟아부을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린 듯하다.
위안화 환율의 경우 급격한 평가절하가 재연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7위안을 넘는 이른바 '포치(破七)' 우려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왕퉁싼(王同三) 중국사회과학원 학부위원은 인민일보 계열 경제주간지인 중국경제주간을 통해 "지난해 두 차례 정도 포치에 근접했지만 실제 이뤄지지는 않았다"며 "위안화 환율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적 악재가 줄어든다면 올해는 더 안정적일 것"이라며 "다만 '7'이라는 심리적 저항선일 뿐으로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7위안을 다소 상회하더라도 큰 문제는 아니다"고 부연했다.
올해 통화정책은 완화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민영기업과 중소·영세기업의 자금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유동성 추가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다.
왕퉁싼 학부위원은 "연초 세 차례에 걸친 인민은행의 지급준비율 인하로 1조 위안 이상의 유동성 공급 효과가 있었다"며 "중국 은행들의 지준율이 여전히 두 자릿수로 높은 만큼 온건한 통화정책을 펼칠 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중국의 주요 정책 방향 설명에서 '부동산은 투기용이 아니라 주거용'이라는 표현이 빠지면서 규제 완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 하강 국면에 부동산 시장을 무조건 옥죄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산둥성은 최근 부동산 매매 제한 조치를 취소했고, 광저우와 선전은 주택대출 이자율을 하향 조정했다. 주하이는 구매 제한 규제를 풀었다.
이에 대해 루팅(陸挺) 노무라증권 수석애널리스트는 "올해 상반기 부동산 시장의 침체 국면이 지속될 것"이라며 "봄 이사철이 끝나면 대도시를 대상으로 규제 완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반론도 있다. 위안강밍(遠鋼明) 칭화대 중국·세계연구센터 연구원은 "일부 규제 완화는 개별 도시에 국한된 문제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이 변화한 것 같지는 않다"며 "부분적 규제 완화가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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