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열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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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주 기자
입력 2019-03-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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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는 일이란 선택할 수 없다고 했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2008년 어느날 웬 일본 사람(가명이라고 하니 사실 진짜 일본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의 손을 통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네, 저는 비트코인(BTC)입니다.

한때는 잘 나갈 때도 있었죠. 아홉살 되던 해던가요? 2017년 12월에 몸값이 1BTC당 1만9800달러(약 2240만원)까지 올랐습니다. 이더리움과, 리플, 모네로, 퀀텀 등 다양한 동생들을 대신해 암호화폐의 대명사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그 유행어들의 제조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21일(미국시간) 3900달러까지 떨어져 고점 대비 80% 넘게 빠졌습니다. 시가총액도 2018년 1월부터 85% 감소한 상태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암호화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이른바 가상화폐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한 때는 월가, 실리콘밸리 할 것 없이 시장의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암호화폐를 '주류 경제'로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왔죠.

그런데 ICO 정보 제공업체인 토큰데이터에 따르면, 2018년만 해도 ICO에 120억 달러가 유입됐지만 올해는 1억 달러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합니다. ICO로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의 파산율은 74%에 달한다고 하네요. 채굴업체들의 매출도 15개월간 계속 줄어들고 있답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물론 열살 인생 동안 처음 겪는 역경은 아닙니다. 세 살 되던 해에도 부침은 있었어요. 2011년 7월에 1BTC당 31달러였는데 다섯 달 만에 2달러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봤죠. 그러다가 2013년 4월에는 266달러까지 오르기도 했어요. 다시 뛰어오를 그날을 포기 못하는 이유죠.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것이 암호화폐 시장인데 각종 범죄가 판을 치니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졌나봐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직접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단속에 나설 정도였으니까요. 자연스레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잠재적인 사용자들에게 외면 당하는 상황인 것이죠. 

아직 희망은 남아 있는 듯 합니다. 시장 규모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일부 서구 국가들은 암호화폐를 조건부 승인하거나 벤처 캐피탈(VC)을 지원하기도 한답니다. 결국 암호화폐의 장기적인 생명 연장은 구체적인 용도 개발과 블록체인 기술에 달렸다는 설명입니다. 아, 이래봬도 제가 블록체인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당초 스타벅스는 지난해 8월 바크트(Bakkt)라는 플랫폼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매장에서 직접 가상화폐를 유통하기보다는 플랫폼에서 달러화를 환전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WSJ의 21일 보도를 보니 파트너였던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모회사 ICE(Intercontinental Exchange)가 승인을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바크트의 암호 기술은 뛰어나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불신이 악영향을 준 듯 해요. 핀테크 자문회사인 FS 벡터의 파트너인 존 콜린스는 "승인을 기다리는 바크트의 고난은 최고의 자금 지원 프로젝트조차 직면하고 있는 (암호화폐의) 문제를 반영한다"며 "몇몇 규제 당국자들 사이에는 회의론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가장 길고 힘든 슬럼프가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매우 열심히 버티는 것을 '존버'라고 한다죠. 올해로 11살을 맞은 저도 '존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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