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안산 반월공단에서 만난 한 자동차부품업체 사장은 "업황이 올해 더욱 악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고사 위기에 처한 자동차부품업계를 살리기 위해 내수진작 정책과 금융 및 세제 등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기화되고 있는 내수 침체와 최저임금 인상 등 급격한 친노동 정책으로 중소기업의 비명은 절규에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지역 중소 제조업체의 어려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정부가 금융권의 중소기업 여신심사를 대대적으로 개편한다고 애드벌룬을 띄운 직후라 심각성이 더 피부로 와 닿았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체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은행들이 앞다퉈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경쟁력을 인정 받은 일부 우량 중소기업들을 제외한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돈 구경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858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년 중소기업 설 자금 수요'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50.8%가 자금사정이 곤란하다고 호소했다. 중소기업 두 곳 중 한 곳은 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자금사정이 원활하다고 답한 곳은 9.5%에 그쳤다.
가산디지털단지에 입주한 IT 기업 박모 대표는 "신용대출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고 담보대출이나 구매자금대출도 실질적으로 이용하기가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봄철 신학기 특수를 맞아 주문은 많이 밀려오고 그만큼 돈 쓸 데도 많은데 자금을 빌릴 길이 없어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고 토로했다.
성장과 리스크 관리를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은행들도 정부 입장에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연체 위험을 무릅쓰고 무작정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기는 힘든 노릇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무래도 부동산담보대출이나 대기업대출에 비해 중소기업의 신용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며 "당장 미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더라도 5년 뒤에 실적이 미미하거나 망하는 바이오·벤처 기업이 늘면 결과적으로 은행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사들은 기업여신 평가 방법의 다양화에 대해선 긍정적이지만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새로운 여신평가제도를 너무 서둘러서 도입하면 건전성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신심사기술로는 기술력이나 성장성을 제대로 평가하기가 이르다는 견해도 나온다.
각각의 동상이몽 속에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은행 대출에서 관계형 금융(relationship banking) 관행이 연착륙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서 제도화된 것이 5년이 다 돼가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형 금융이란 금융기관이 중소기업과 밀착관계를 형성하여 미공개의 정성적 정보를 축적하고 이를 기초로 장기 대출,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유망 중소기업들이 동종업종의 업황에 따라 불리하게 평가되거나 단기 대출로 겪는 애로를 덜 수 있다.
관계형 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정성적 정보가 대출심사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담보관행이나 금융기관 내부통제절차도 개선해야 한다. 수익성 위주로 은행이 재편되다 보니 중소기업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대출을 결정할 인력도 없어, 구조적으로 제대로 된 대출이 불가능하다.
중소기업 천국이라는 독일과 벨기에도 관계형 금융을 장려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100년 강소기업들을 해마다 배출하고 있다. 350년 장수기업 독일의 머크와 글로벌 종합 제과 벨기에의 로투스베이커리즈 그룹이 여기서 기틀을 닦았다.
주식·회사채 등 비중이 1%도 안 되는 직접금융 부문에서도 자금조달 수단을 확충해야 한다. 또 맞춤형 자금조달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 컨설팅 조직을 운영하거나 정보를 수시로 공유할 수 있는 지원창구 마련이 시급하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차원에서 중소기업 자금조달의 숨통을 틔워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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