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주식 혹은 금리가 상승할지 하락할지를 단도직입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상당기간 변동성이 심한 국면을 거쳐 상승세가 나타날 수도 있고, 아니면 상승 국면이 펼쳐진 후 하락 전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분법은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친숙한 방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환율은 주가나 금리와 달리 상대가격인 데다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워낙 많기에 환율 움직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환율을 이해하기에는 어찌 보면 이분법적인 사고로 단순화해 바라보는 것이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이는 한국 경제가 좋으면 원화 강세(환율 하락), 한국 경제가 나쁘면 원화 약세(환율 상승)로 보는 한국 경제의 강약 판단에 기인한다.
하지만 환율은 한국 경제만으로 재단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은 한국 경제의 성숙에 따라 불가피한 구조적인 부분으로, 성장률의 하락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기업 여건과 자영업 악화는 단순히 한국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과도기에서 전 세계 공통의 현상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 환율 설명력이 높은 인플레이션이 상대적으로 높지도 않다.
따라서, 기업인의 관점에서 기업 여건이 어렵고 한국 경제 전망이 부정적으로 느껴진다고 해도, 원화가 약세를 보이며 환율이 상승하리라는 판단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상 한국 경제는 대외 여건에 민감한 바, 달러·원 환율도 대외 여건 변화에 쉽게 좌우된다. 한편으로는 글로벌 외환시장이 달러화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형성된 달러화의 움직임이 환율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달러·원 환율을 한국 경제와 원화를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대외 여건, 세계 경제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시장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구체적으로는 달러화 대 비(非)달러화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바라보는 게 좋다. 달러화는 미국 경제를 대변하며, 비달러화는 미국 외 세계 경제를 대변한다. 그리고 원화는 비달러화에 속한다.
환율이 하락할 때는 상대적으로 미국 경제가 부진해서 하락할 수도 있고, 미국 외 세계 경제가 호황을 보여 하락할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미국 주가와 금리가 하락하기 쉬운 환경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미국 주가와 금리도 덩달아 상승하기 좋은 환경이다.
마찬가지로 환율이 상승할 때는 미국 경제 호황이 달러화 상승을 견인할 수도 있고, 미국 외 세계 경제가 불황을 보여 달러화 환율이 상승할 수도 있다.
전 세계 자본은 미국 투자를 기록적으로 늘린 상태인데,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려면 미국 외 세계 경제가 높은 수익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성장률이 개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 국면은 미국 경제가 여전히 잠재성장률 이상의 성장세를 유지할 전망인데 반해 유럽이나 중국, 신흥국 등 주요 경제권은 하방 압력이 강하다. 더 나은 수익 기회를 찾아 달러화 자산을 매도하기에는 대신 투자할 자산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향후 어느 시점에 미국 대비 다른 국가들의 성장 환경이 개선돼 원화 강세 환경이 조성되면, 기업인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2017년의 상황을 예로 들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소재인 반도체를 포함해 소수의 산업만이 세계 경제의 회복을 향유했다. 그러한 상황은 해당 산업에 속하지 않는 상당수의 기업인들 입장에서 원화 강세 현상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기에 수출기업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세계 경제가 미처 회복세를 보이기 전에 미국 경제도 부진이 심화된다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다시 금리 인하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경쟁적으로 시행해 환율전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는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