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까지 내다팔아···" 유동성 위기 얼마나 심각하길래
HNA그룹은 지난 27일 홍콩 캐세이퍼시픽에 홍콩익스프레스를 48억3000만 홍콩달러(약 7128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홍콩 명보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이는 HNA그룹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는 가운데 나온 조치로, HNA그룹이 부채 상환에 얼마나 열을 올리는지를 보여준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 평했다.
심지어 HNA그룹 산하 간판기업이라 할 수 있는 하이난항공은 지난 15일 공시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보잉 737-800 기종 여객기 2대를 2750만 달러에 아일랜드 소재 NGF 제네시스라는 국제항공운송업체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중국 현지언론들은 하이난항공이 지난해에만 최소 세 차례 보유한 여객기를 내다팔아 현금을 마련했다고도 보도했다.
◆"실적악화, 디폴트, 파산설까지···" 첩첩산중
실적 악화, 채무불이행(디폴트), 주식압류, 파산설까지, 실제로 최근 중국 언론 보도를 통해서 본 하이난항공의 경영난은 심각해 보인다.
27일 하이난항공은 실적예비 보고서를 발표해, 지난해 약 30억~40억 위안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 예고했다. 올초까지만 해도 -5억~5억 위안 순익을 기록할 것이라 예고한 것에서 몇 배나 더 악화한 것이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하이난항공이 상장 20년 이래 최악의 실적보고서를 공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적 악화는 사실상 유동성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HNA그룹을 둘러싼 디폴트 위기도 불거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 17일 하이난항공이 35억 위안 채권 원리금 상환금을 제때 갚지 못해 디폴트 위기에 처했다. HNA그룹은 서둘러 자사가 대주주로 있는 하이난성 하이커우 국제공항을 통해 초단기 채권을 발행, 사흘 후인 20일에야 비로소 원리금을 상환하며 발등에 급한 불을 껐다. 하이난항공은 이달 초에도 10억 위안 규모 초단기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채무 상환에 사용했다.
하이난항공은 지난해 말엔 중국 국가개발은행에 75억 위안을 대출 받아 여객기 연료공급·유지보수·이착륙 비용 등 경영성 지출로 사용하기도 했다.
유동성 위기 속에 HNA그룹 계열사 주식이 압류되는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26일 HNA그룹 산하 상하이거래소 상장사인 하이항촹신(海航創新)은 공시를 통해 3억 위안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자사주 1742만2100주가 후난성 고급법원에 의해 압류된 상태라고 밝혔다. 앞서 15일 하이난항공도 산둥성 법원으로부터 약 105억 위안 시가총액에 달하는 주식이 압류된 상태라고 공시했다.
올초엔 시장에 HNA그룹 파산설까지 흘러나오며 그룹 차원에서 즉각 성명을 통해 소문 진압에 나서기도 했다. HNA그룹은 성명에서 "파산설은 완전히 사실이 아니다"며 "우리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이미 지났으며, 간신히 안정적 국면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이어 "항공기 사업에 집중하고 건강한 발전을 통해 유동성 리스크 해소를 위해 힘쓸 것"이라고 했다.
◆"팔고 또 팔고···" 1년간 50조원어치 자산 매각
1993년 중국 하이난(海南)성에서 항공사로 출발한 HNA그룹은 2015년부터 공격적인 해외 M&A를 통해 사세를 불려나갔다. 지난 3년간 힐튼호텔, 도이체방크 등 은행, 부동산, 호텔, 영화사 등 무려 400억 달러(약 43조원)어치의 자산을 사들이며 글로벌 'M&A 포식자'로 불렸다.
하지만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고위층 유착 논란, 과다부채 등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중국 당국의 감시망에 올랐다. 특히 최근 중국 당국의 금융규제 강화 속에 심각한 자금난을 겪어왔다.
이에 하이항그룹은 심각한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힐튼 호텔, 도이체방크 지분 등 그동안 매입했던 자산을 내다팔고 있다.
올초엔 미국 뉴욕 맨해튼 빌딩을 서둘러 매각하면서 4100만 달러 손해를 입기도 했다. 최근엔 산하 IT자회사인 팩테라(Pactera) 테크놀로지 인터내셔널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그런데 입찰가격이 약 5억~7억 달러로 매겨져 앞서 2016년 매입 당시 가격과 비교해 보면 사실상 손해보고 팔 처지에 놓였다. 이밖에 산하 보유한 스위스 항공기 임대그룹 아볼론홀딩스 등도 매수자를 물색 중이다. HNA그룹에 따르면 1년간 매각한 자산만 3000억 위안어치에 달한다. 얼마 전엔 산하 저가항공사인 홍콩익스프레스까지 내다팔며 위기설이 더 불거졌다.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천펑(陳峰) HNA그룹 회장은 앞서 27일 보아오포럼 석상에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확고하게 자산을 매각해 빛을 갚을 것"이라면서도 항공업이라는 핵심사업 임무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커다란 위기는 이미 지나갔다"며 "다만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NA그룹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7월 왕젠(王健) HNA그룹 회장이 프랑스에서 사고로 숨지면서 그룹 내부 분란이 일고 있는 것도 문제다. 왕 회장 사고사 후 그동안 경영 일선에 물러나 있었던 그룹 공동창업자 천펑이 경영을 맡으면서 자신의 아들과 조카를 주요 보직에 앉혔다. 천펑 회장이 그룹 경영을 맡은 후 이사회 임원 11명 중 5명이 회사를 떠나는 등 그룹 경영에도 혼란을 빚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