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 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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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입력 2019-03-2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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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최근 한국팩트체크대상 시상식에 다녀왔다. 한국언론학회와 SNU팩트체크센터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올해 두 번째로, 2018년 한 해 동안 사회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갖는 공적 사안을 정밀하게 검증·보도해 시민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고 한국 언론의 질적 향상에 기여한 팩트체크 보도에 주는 상이다. 영예의 수상작은 뉴스타파의 <영화 ‘그날, 바다' 검증 보도>와 KBS의 <2018년 6·13 지방선거-선거방송토론회 발언 실시간 검증 팩트체크>, SBS `사실은’팀의 <전두환 회고록을 검증한다–팩트체크 연속보도> 세 편이었다.

특히 필자의 관심을 모은 것은 뉴스타파의 검증보도였다. 우선 심사위원장(양승목 서울대 교수)의 심사평.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여전히 내력설과 외인설이 엇갈리고 있지만 합리적 추론과 다양한 증거를 바탕으로 사실관계에 위배되는 것을 하나씩 지워나가 지난해를 대표하는 팩트체크 보도로 손색없었다.” 수상자인 뉴스타파 김성수 기자의 “(제작진이) 굉장한 집념과 열정으로 임했지만 대중들이 유력한 가설을 넘어서 진실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검증이 필요하다”는 검증 의도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수상팀의 주제 선정이나 검증방법, 애로사항 등을 듣는 과정에서 새삼 드는 생각은 제대로 된 팩트체크는 시간이 많이 걸리며 무척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정말 어렵게 만들어진 이런 팩트체크 보도를 국민들이 많이 읽고 보고 있을까? 별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극적인 허위정보에 비해 눈길을 끌지 못하는 탓일 게다. 어떻게 하면 일반 국민 혹은 시민들에게 팩트체크 보도를 많이 접하게 하고 나아가 시민 스스로가 허위정보인지 여부를 판별해내는 미디어리터러시 역량을 높일 수 있을까? 공공기관에서 미디어교육 책무를 맡고 있는 필자가 요즘 골몰하는 이슈다.

한국에서 팩트체크는 2012년 오마이뉴스가 대통령 선거 공약을 검증하는 코너인 ‘오마이팩트’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2014년 9월 JTBC가 메인뉴스인 ‘뉴스룸’에 팩트체크를 고정코너로 신설하면서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2017년은 한국 언론사에서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원년으로 평가할 만하다.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팩트체크 보도 자체가 크게 늘어났고, 투표자 중 팩트체크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절반 이상(53%)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언론사와 대학 간 협업 모델인 ‘SNU팩트체크’라는 플랫폼이 구축되고 팩트체킹 전문 미디어기업을 표방하는 ‘뉴스톱’이 생긴 것도 2017년이다.

2019년 현재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 주요 일간신문들이 팩트체크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언론사마다 팩트체크에 대한 이해도가 천차만별이고 수준이 균질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 중요성에 이견을 다는 언론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팩트체커로서 언론인을 우선 꼽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확인을 넘어 사실검증은 언론의 역할이고 책무다. 그러나 팩트체킹은 앞으로 언론을 넘어 확장될 수밖에 없다. 아니 확장되어야 한다. 누구나 1인 미디어가 될 수 있고 빛의 속도로 정보나 콘텐츠가 전파되는 지능정보화 세상에서 언론만이 감당할 수 없다. 사실 여부를 다투는 영역도 무궁무진하고 전문적이다. 궁극적으로 각자 나름의 전문성을 가진 모든 시민들이 팩트체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날 시상식에서 돌아오면서 필자를 짓누른 것은 팩트 그 자체였다. ‘사실과 진실의 등불을 밝힌다’를 사시로 내건 언론사에서 20년 가까이 선배들로부터 팩트에 대한 중요성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았건만 문득 ‘팩트가 무엇일까’라는 본질적인 의문이 든 것이다. 그리고 '팩트풀니스'라는 책이 오버랩됐다. 빌 게이츠가 미국 모든 대학 졸업생에게 e북을 선물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강추했으며, 옵서버가 선정한 '금세기 최고의 책'이라는 요란한 문구보다 저자와 책 제목에 꽂혔기 때문이다.

한스 로슬링은 스웨덴의 의사이자 공중보건 전문가이고 통계학자이며 게다가 테드의 스타강사여서 필자는 지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들 부부와 함께 쓴 이 책이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는 뒤늦게 안 사실과 무엇보다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 사로잡혔다. ‘사실충실성’으로 번역된 이 말은 사전에 없는 저자의 신조어다. ‘강력한 사실을 바탕으로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뜻한다는데, 느낌이나 경험을 ‘사실’로 인식하는 인간의 열 가지 비합리적 본능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확증편향이 맹위를 떨치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에 팩트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역작이라고 해서 온라인 주문을 꾹 눌렀다. 스포일러 하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13가지 문제에서 인간의 평균 정답률은 침팬지(33%)보다 낮은 16%로 2개 미만이었고, 만점은 한명도 없었으며, 15%는 0점이었다. 그럼 나는? 평균은 나올까? 책이 오기까지 조바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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