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외교부는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약 25만여 페이지에 달하는 1602권의 외교문서를 원문해제와 함께 국민에게 공개했다.
특히 공개된 외교문서는 1988년를 중심으로 작성돼, 그 전해인 1987년 11월 29일에 발생한 KAL기 폭파사건과 88서울올림픽 등과 관련한 사항들에 대한 막전막후가 담겨있어 눈길이 쏠린다.
KAL기 폭파사건과 관련, 당시 김현희가 붙잡혀있던 바레인에 특사로 파견된 박수길 당시 외교부 차관보는 바레인 측과의 면담 뒤 "늦어도 (1987년 12월) 15일까지 (김현희가 한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바레인 측으로부터 인도 통보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했다.
전두환 정권이 KAL기 폭파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정황은 지난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확인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공작)' 계획 문건 등으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또한 사건 발생 초기에 일본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있던 김현희가 일본으로 이송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뤄졌던 한일 간의 신경전도 드러났다.
1987년 12월 2일경 주일대사가 외교부에 보낸 전문에 따르면, 박련 주일대사관 공사는 도쿄에서 후지타 일본 외무성 아주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아국(한국)은 사고비행기의 소속국으로서 신병인도에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후지타 국장은 "(김현희 등이) 일본의 위조여권을 갖고 있음에 비춰 (용의자) 2명의 국적 등 신원확인 문제를 일본이 우선 책임을 가지고 신속히 해결해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음날 일본 도쿄신문에는 외무성 수뇌부를 인용해 '마유미(김현희)의 신병 인도와 관련, 1차적으로는 일본 정부에 청구권리가 있다. 여권법 위반 혐의 수사를 위해 신병 인도를 요청할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에 박련 공사는 전문을 통해 "한일 간에 신병인도 문제를 놓고 경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튿날 주일대사관 측은 일본 외무성을 다시 방문, "마유미에 대한 수사관할권 문제에 있어 한국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면서 "관할권을 가지고 다툼으로써 진상규명이 늦어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일본 측은 "한국의 관할권 행사근거보다 (일본의 근거가) 훨씬 약하다"면서 한국에 우선권이 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일본은 12월 7일 바레인 정부에 '바레인이 김현희를 한국 정부에 인도하기로 결정하면, 최대한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통보했고, "한국과 신병인도를 둘러싸고 경쟁할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공식적으로 전했다.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며, 외교문서공개목록과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도서관 등에 배포된다. 외교사료관 홈페이지와 모바일을 통해서도 이용할 수 있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26차에 걸쳐 총 2만6600여 권(약 370만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해 왔으며, 앞으로도 국민의 알 권리 신장과 외교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하여 외교문서를 적극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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